대환난에 대한 성경적 용어 정리
1. 서론
미래에 일어날 대환난 기간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자세하고 광범하게 예언된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성경은 이 7년의 기간에 일어날 무서운 심판과 재앙을 묘사할 뿐 아니라, 이 전대미문의 때의 성격·목적·범위를 드러내기 위해 매우 풍부한 용어와 표현들을 사용한다. 이런 성경적 명칭들은 단순한 동의어나 교대로 쓰는 라벨이 아니라, 인류 역사 최정점의 시기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비춰 주는 창(窓)들이다.
대환난을 가리키는 다양한 성경 용어들을 이해하면, 이 시기의 다면적 목적과 성격에 대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통찰을 얻게 된다. 고대 히브리 예언서들에서부터 요한계시록의 묵시적 환상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이 기간에 대해 하나님의 의도와 이스라엘과 열방에 미칠 파괴적인 영향을 드러내는 특정한 용어들을 선택해 사용한다. 각각의 명칭은 신학적 무게를 지니며, 하나님의 심판, 이스라엘의 회복, 그리고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을 위한 최종 준비라는 측면들을 드러낸다.
이 글은 구약과 신약, 그리고 주제별 의미에 따라 대환난을 묘사하는 성경적 용어들을 폭넓게 정리하여 살펴본다. 이 명칭들을 성경 본문 속 문맥과 함께 연구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이 시기의 엄중함과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시는 주권적 목적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2. 구약에서 사용된 대환난의 용어들
구약의 예언자들은 이스라엘과 온 세상에 전례 없는 환난이 닥칠 미래의 시기를 묘사하기 위해 다양한 히브리어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 용어들은 대환난의 성격과 목적의 서로 다른 측면을 강조한다.
주의 날(여호와의 날)
아마 구약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용어는 “주의 날”, 혹은 “여호와의 날”(히브리어: 욤 야훼)이다. 이 표현은 요엘, 아모스, 오바댜, 스바냐, 이사야 등 여러 예언서에 반복해서 등장한다. “주의 날”은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시고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역사에 직접 개입하시는 특정한 시기를 가리킨다. 요엘은 이 날을 이렇게 묘사한다.
“곧 어두움과 캄캄한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라”
— 요엘 2:2
“주의 날”은 악인에 대한 심판과 더불어 의로운 남은 자에 대한 구원을 함께 포함한다.
야곱의 환난의 때
예레미야 30장 7절은 독특하게도 유대인 중심의 명칭 하나를 제시한다. 곧 **“야곱의 환난의 때”**이다(히브리어: 엣 차라 레야아코브). 이 표현은 대환난을 이스라엘(야곱)을 위한 극심한 고난의 기간으로 특정한다.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 데 없음이여 그 날은 곧 야곱의 환난의 날이로다 그러나 그가 그 환난에서 구하여 내리로다”
— 예레미야 30:7
이 용어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에게 징계적·교정적 심판이 임하여, 마침내 민족적 회개와 회복에 이르게 하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강조한다.
해산의 진통(산고)
여러 구약 예언자들은 대환난을 묘사하기 위해 해산의 진통, 산고의 이미지를 사용한다(이사야 21:3; 26:17-18; 66:7; 예레미야 4:31; 미가 4:10). 이 비유는 고통의 격렬함과 동시에 그 이후에 올 일을 향한 필연성을 함께 드러낸다. 산고가 출산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것처럼, 이 심판들은 하나님의 나라 계획이 곧 성취될 것임을 보여 준다. 또한 이 이미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의 강도와 빈도가 점점 더 심해진다는 점도 시사한다.
보복과 진노의 날
이사야는 신적 보응을 강조하는 용어들을 자주 사용한다. “보복의 날”(이사야 34:8; 35:4; 61:2; 63:4), 그리고 스바냐가 말하는 “여호와의 진노의 날”(스바냐 1:18)이다. 이런 명칭들은 대환난이 누적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롭고 정당한 심판이라는 사실을 부각한다. 이 보복은 감정적 앙갚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위를 거부하고 백성을 억압해 온 반역적인 세상과의 “최종 결산”이라는 점에서 사법적(법정적) 성격을 띤다.
분노(진노, 격분)
다니엘 11:36과 이사야 26:20은 “분노”, “진노”(히브리어: 자암)를 언급한다. 이 용어는 특히 이스라엘의 오랜 반역에 대해 쌓여 온 하나님의 맹렬한 분노를 가리킨다. 이사야는 이렇게 권면한다.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 이사야 26:20
이 “분노”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루어지기 전에 반드시 전 과정을 다 겪어야 할 하나님의 확정된 진노를 의미한다.
다니엘의 칠십 이레
다니엘 9:24-27은 이스라엘을 위해 “칠십 이레”(히브리어: 샤부임, 일곱의 단위, 곧 연 단위의 일곱)라는 예언적 시간표를 제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끝나는 육십구 이레가 지난 후, 마지막 제칠십 이레까지 사이에 공백이 존재하며, 바로 이 마지막 한 이레(7년)가 대환난 기간이다. 다니엘 9:27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 다니엘 9:27 (요지)
이 마지막 한 이레(7년)가 대환난 전체를 이루는 기본 틀이다.
기타 묘사적 용어들
구약 예언자들은 대환난의 성격을 생생하게 그려 내기 위해 다음과 같은 다양한 표현을 사용한다.
- 환난과 고통의 날 (스바냐 1:15; 다니엘 12:1)
- 흑암과 캄캄한 날 (스바냐 1:15; 요엘 2:2)
- 구름과 흑암의 날 (스바냐 1:15; 요엘 2:2)
- 나팔 소리와 경고의 날 (스바냐 1:16)
- 황폐의 날 (스바냐 1:15)
- 넘치는 채찍(휩쓸고 지나가는 채찍) (이사야 28:15, 18)
- 재앙의 날 (신명기 32:35; 오바댜 12–14)
- 그 질투의 불 (스바냐 1:18)
이러한 표현 하나하나는 이 미래 시기를 이해하는 데 독특한 색채를 더해 주며, 그 혹독함·전면성·신적 기원을 강조한다.
3. 신약에서 사용된 대환난의 용어들
신약은 구약의 용어들을 이어받고 확장하면서, 대환난을 가리키는 몇 가지 새로운 명칭도 제시한다. 이 용어들은 주로 예수님의 감람산 강화(마태복음 24장)와 사도들의 서신(데살로니가전·후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집중되어 있다.
환난과 큰 환난
예수님 자신이 감람산 강화에서 **“환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신다. 마태복음 24장 9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경고하신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 마태복음 24:9
여기 쓰인 단어는 “압박하다, 눌러 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극심한 압력과 고통 가운데 짓눌리는 상태를 묘사한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고통이 심각하게 격상되는 시기를 구별하여 **“큰 환난”**이라고 부르신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 마태복음 24:21
이 “큰 환난”은 7년 대환난의 후반부를 가리키는 말로, 중간 시점의 “멸망의 가증한 것”(마태복음 24:15)이 세워진 이후, 곧 후 3년 반 동안의 극도로 심각한 시기를 말한다.
시험의 때
요한계시록 3장 10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이렇게 약속하신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 요한계시록 3:10
여기서 **“시험의 때”**라는 명칭은 몇 가지 중요한 특성을 드러낸다. 시간적 한정성(“때”로 규정됨), 목적(“시험, 시련”), 그리고 범위(“온 세상에 임하여”)이다. 이 기간은 전 세계에 거하는 불신 인류를 시험하고 드러내는 하나님의 정해진 시기이다.
진노
신약의 여러 구절은 대환난을 단순히 **“진노”**라고 부른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가리켜 “우리를 장차 올 진노에서 건지시는 이”라고 말하고(데살로니가전서 1:10), 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라고 확증한다(데살로니가전서 5:9).
요한계시록은 이 용어를 더욱 자주 사용한다.
- “그들의 진노의 큰 날” (요한계시록 6:17)
- “하나님의 진노” (요한계시록 14:10, 19; 15:1, 7; 16:1)
- “어린 양의 진노” (요한계시록 6:16)
이 표현들은 대환난을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쌓아 오신 진노를 전면적으로 쏟아부으시는 시기로 규정한다. 이 진노는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적 진노이면서, 동시에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진노이기도 하다.
주의 날(주의 날, 주의 날의 날)
사도들은 구약 예언자들이 사용하던 “주의 날”(헬라어 개념)을 그대로 이어 사용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절과 데살로니가후서 2장 2절에서 이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예언 전통과의 연속성을 유지한다. 베드로 역시 우주적 심판을 묘사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 베드로후서 3:10
심판의 때
요한계시록 14장 7절은 이렇게 선포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 요한계시록 14:7
여기서 **“심판의 때”**라는 명칭은 대환난이 자의적인 고통이 아니라, 유죄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법정 심판임을 부각한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으로서 이 기간 동안 판결을 선포하시고 형벌을 집행하신다.
해산의 진통
예수님은 감람산 강화에서 구약의 해산의 진통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다 사용하신다. 예수님은 거짓 그리스도, 전쟁, 기근, 지진 등 여러 징조를 말씀하신 후 이렇게 선언하신다.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 마태복음 24:8
여기서 “재난의 시작”은 문자적으로 “해산의 진통의 시작”을 의미한다. 바울도 같은 비유를 사용한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 데살로니가전서 5:3
기타 신약의 명칭들
신약은 대환난의 여러 측면을 가리키며 다음과 같은 표현들도 사용한다.
- “그 날” (데살로니가전서 5:4 등)
- “그 날들” (마태복음 24:22; 마가복음 13:20)
- “환난의 때” (마가복음 13:19)
비록 표현 자체는 단순해 보이지만, 종말론적 문맥 속에서 이해할 때 이 단어들 역시 예언 성취의 무게를 지닌다.
4. 대환난 용어들의 의미와 신학적 중요성
성경에 나오는 대환난 용어들은 단순한 동의어가 아니라, 이 전대미문의 기간의 여러 측면을 드러내기 위해 신중하게 선택된 표현들이다. 성경이 왜 이렇게 다양한 용어를 사용하는지를 이해하면, 대환난의 복합적인 성격과 목적을 훨씬 풍성하게 파악할 수 있다.
하나님의 주권적 주도성 강조
“주의 날”, “하나님의 진노”, “분노(진노)”와 같은 용어들은 대환난이 하나님의 주권적 뜻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것은 단지 인류의 갈등이 통제 불능 상태로 번지거나 자연 재해가 우연히 겹쳐진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집행하시는 심판이다. 수십 차례 반복되는 “날”이라는 표현(“그 날”, “보복의 날”, “진노의 날” 등)은 하나님께서 정하셔서 다스리시는 특정 기간이 있음을 보여 준다. 사도행전 17장 3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 사도행전 17:31 (요지)
대환난은 바로 이 “작정된 날들”의 정점에 해당한다.
사법적(법정적) 성격
“심판의 때”, “보복의 날”, “진노”와 같은 용어들은 대환난의 법정적·사법적 성격을 부각한다. 이 시기는 하나님의 법정이 개정되는 때로, 판결이 선고되고 형벌이 집행된다. 인류의 누적된 죄책—세대에 걸친 반역, 그리스도에 대한 거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박해—가 마침내 다뤄지는 시간이다. 대환난은 신이 잔혹해서 벌주는 것이 아니라, 드디어 정의를 온전히 이루시는 과정이다.
역사상 전례 없는 강도
예수님은 “큰 환난”이라는 명칭과 함께 다음과 같이 덧붙이신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 마태복음 24:21
이는 이 시기가 범주 자체가 다른 유일무이한 환난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환난, 고통, 재난, 황폐”와 같은 용어들은 그 전대미문의 혹독함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다니엘도 이 시기를 이렇게 묘사한다.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이 있을 것임이라”
— 다니엘 12:1
이 강조점은, 신자들이 모든 시대에 경험해 온 일반적인 환난(요한복음 16:33)이나,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과 같은 국지적 역사적 심판들과 미래의 7년 대환난을 분명히 구별시켜 준다.
점진적·단계적 격화
“해산의 진통” 비유는 대환난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해산의 진통이 출산이 가까울수록 빈도와 강도가 점점 더 심해지듯, 대환난의 심판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격화된다. 요한계시록의 구조—일곱 인 심판, 일곱 나팔 심판, 일곱 대접 심판—은 이러한 진행을 반영하며, 각각의 단계는 그 이전보다 더 참혹하다. 심판들은 반복이 아니라 점진적 악화이며, 재림이라는 절정에 이를 때까지 계속 높아져 간다.
이스라엘에 대한 특별한 목적
“야곱의 환난의 때”나 “다니엘의 칠십 이레”와 같은 용어들은 특히 대환난이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시기임을 밝힌다. 온 세상이 심판을 받지만, 하나님은 이 기간 동안 유대 민족을 향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 대환난은 이스라엘을 징계하고 정결케 하여, 민족적으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전 세계적 범위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시험의 때”(요한계시록 3:10), “그 질투의 불이 온 땅을 소멸하리라”(스바냐 1:18)와 같은 표현은 이 심판의 전 지구적 범위를 강조한다. 과거에는 특정 국가나 지역에 국한된 심판이 있었다면, 대환난은 “땅에 거하는 자들”—하나님께 반역하는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피할 수 없는 전 세계적 심판이 될 것이다.
분명한 시간적 한계
대환난 용어들은 이 기간이 시간적으로 제한되어 있음을 일관되게 보여 준다. “때”, “그 날들”, “한 이레”(7년), “때와 때들 반 때”(3년 반), “사십이 달”, “천이백육십 일” 등은 모두 이 기간이 엄연히 끝이 있는 정해진 시기임을 알려 준다.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하신다.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시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 마태복음 24:22
하나님은 그 기간의 길이를 주권적으로 7년(다니엘 9:27에 기초한 예언적 기간)으로 정해 두셨으며, 결코 그 한계를 넘기지 않으신다.
5. 용어들 사이의 상호 관계
성경은 대환난 기간을 가리켜 다양한 명칭을 사용하지만, 이 용어들은 서로 동떨어진 라벨들이 아니라, 이 미래의 시기를 종합적으로 묘사하는 상호 연결된 표현들이다. 이 용어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이해하면, 대환난의 범위와 전개 과정을 더욱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서로 겹치고 포괄하는 용어들
여러 대환난 용어들 가운데 일부는 7년 전체를 덮는 우산 개념처럼 기능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주의 날”**이다. 이 용어는 대환난뿐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과 천년왕국의 측면들까지 포괄하는, 보다 넓은 개념이다. 예언자들이 “주의 날”을 말할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역사에 직접 개입하시는 일련의 종말 사건 전체를 내다본다.
이와 비슷하게, “다니엘의 칠십 이레” 가운데 마지막 한 이레는 시간적·연대기적 틀을 제공하며, 대환난과 관련된 모든 사건들은 이 7년의 틀 안에서 전개된다. 다시 말해, 칠십 번째 이레는 대환난을 구성하는 전체 기간의 구조적 골격이다.
전체와 부분을 구분하는 명칭
7년 전체를 묘사하는 용어들과 후반부의 격렬한 기간만을 가리키는 용어들을 구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환난”(마태복음 24:9)은 7년 전체를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반면, “큰 환난”(마태복음 24:21)은 중간 지점의 “멸망의 가증한 것” 이후에 시작되는 후반 3년 반을 특히 지칭한다.
마찬가지로, “야곱의 환난의 때”(예레미야 30:7) 역시 특히 후반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시기에 이스라엘은 적그리스도의 지배 아래서 역사상 가장 혹독한 박해를 당하게 된다. 이러한 구분을 통해, 어떤 본문은 비교적 평화와 번영이 있는 시기(성전이 재건되고 제사가 재개될 수 있는 여건)를 묘사하는 반면, 다른 본문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과 황폐를 묘사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기간 내부의 단계적 전개
**“해산의 진통”**이라는 비유는 대환난 내부의 점진적 진행을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초기의 전쟁·기근·지진·거짓 그리스도 등의 징조들은 “해산의 진통의 시작”(마태복음 24:8)에 해당한다. 시간이 갈수록, 이 고통들은 빈도와 강도가 함께 높아진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인·일곱 나팔·일곱 대접 심판은 바로 이러한 점증적 심판 구조를 보여 준다.
목적 중심 용어들
각기 다른 용어들은 대환난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다양한 목적을 강조한다.
- **“야곱의 환난의 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회개로 인도하시는 목적을 강조한다.
- **“보복의 날”**은 우상 숭배와 불의 가운데 있는 열방을 심판하시는 목적을 부각한다.
- **“분노(진노)”**는 누적된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마침내 터져 나오는 국면을 드러낸다.
- **“시험의 때”**는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고 드러내는 기능을 강조한다.
이 목적들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합적인 계획 속에서 서로 보완적인 측면을 이룬다.
강도를 드러내는 지표 용어들
“환난, 고통, 어두움, 황폐, 진노”와 같은 용어들은 무엇보다도 대환난의 엄청난 강도와 엄혹함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큰”(<큰 환난>),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과 같은 수식어가 더해질 때, 이 시기가 결코 “보통 정도의 시련”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언약적 틀
**“다니엘의 칠십 이레”**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이스라엘과의 언약 관계 속에서 그 의미가 드러난다. 다니엘 9:24-27의 칠십 이레 예언은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이 언약의 틀이 있기 때문에, “야곱의 환난의 때”와 같은 용어가 이스라엘을 특정하면서도 동시에 온 세상에 대한 심판이라는 범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대환난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오랜 불순종 문제를 마침내 처리하시고, 천년왕국에서 새 언약의 축복들을 온전히 이루시기 위한 마지막 언약적 단계이다.
6. 예언적 패턴과 대환난 용어
대환난을 가리키는 다양한 성경적 용어들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죄를 다루시고 구속 계획을 완성해 가시는 일관된 패턴을 반영한다. 초기의 성경 사건들 속에서 드러난 이 패턴들은 대환난에서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성취를 맞이한다.
점진적 계시의 패턴
하나님은 대환난에 대한 계시를 점진적으로 주셨다. 율법서(모세오경)에서의 초기 언급은 비교적 일반적이다(신명기 4:30). 이후의 예언자들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덧붙인다. 다니엘은 칠십 이레라는 시간적 구조를 제시하고, 예수님은 대환난의 중간 전환점(멸망의 가증한 것)을 밝혀 주신다. 요한계시록은 이 심판들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세부 묘사를 제공한다.
성경 여러 권에 걸쳐 등장하는 대환난 용어들의 다양성 자체가, 하나님께서 종말 계획을 계단식으로, 점점 더 밝히 드러내시는 방식을 보여 준다. 각 명칭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계획을 이해하는 데 있어 더 많은 빛과 명료성을 제공한다.
모형적(전형적) 선례들
몇몇 구약 사건들은 대환난의 측면들을 **예표(typology)**로 보여 주며, 사용된 용어들도 이 연결점을 암시한다.
애굽의 열 재앙: 대환난의 여러 심판은 출애굽 당시 하나님이 애굽에 내리신 재앙들을 반영한다. 특히 요한계시록 16장의 대접 심판은 물이 피로 변하고, 흑암, 악성 종기, 우박 등이 나오는 점에서 출애굽기의 재앙들과 밀접히 평행한다. “주의 날”이라는 개념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개입하셔서 거짓 신들과 교만한 왕을 꺾으신 사건을 상기시킨다.
바벨론 포로: “분노(진노)”, “야곱의 환난의 때”와 같은 용어들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되었던 역사적 경험과 연결된다. 하나님이 그 포로 기간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를 정화하셨듯, 대환난은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반역—메시아 거부—를 정결케 하는 과정이 된다. 바벨론 포로 가운데 있던 다니엘이, 미래의 “환난의 때”(다니엘 12:1)에 대한 계시를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노아의 홍수: 대환난의 전 세계적 심판이라는 특징은 노아 시대의 전 지구적 홍수와 평행한다. 예수님은 이 둘을 직접 연결하셨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 마태복음 24:37
두 사건 모두 전 인류의 죄악에 대한 포괄적 심판이며, 믿음의 남은 자가 구원을 받는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스라엘과 열방에 대한 이중 초점
대환난을 묘사하는 성경 용어는 항상 이스라엘과 열방에 대한 이중 목적을 유지한다. “야곱의 환난의 때”는 유대인에 초점을 맞추지만, “주의 날”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우상 숭배에 빠진 이방 나라들까지 포함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이스라엘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만국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보편적 통치를 드러낸다.
대환난은 “이방인의 때”(누가복음 21:24)—바벨론 때부터 시작된, 이방 민족이 예루살렘을 짓밟는 시대—를 종결시키며, 동시에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을 준비한다. 이 두 목적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구속 계획 안에서 평행하게 진행되는 이중 축이다.
산고와 새 창조
“해산의 진통” 비유는 대환난을 새 창조라는 더 큰 성경 주제와 연결한다. 피조세계 전체가 “지금까지 함께 탄식하며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로마서 8:22)는 말씀처럼, 대환난은 메시아 왕국이 탄생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산고라고 할 수 있다. 이 고통은 목적 없는 고통이 아니라, 그리스도 통치 아래의 새 시대가 시작되기 직전의 필연적 과정이다.
반복되는 “주의 날” 패턴
“주의 날” 개념은 성경 전체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가까운 시기의 심판과 먼 장래의 종말 심판을 함께 가리킨다. 역사 속에서 바벨론(이사야 13:6, 9), 애굽(에스겔 30:3), 예루살렘(요엘 1:15)에 임했던 심판들도 일종의 “주의 날”이었다. 이들 과거의 심판들은 궁극적으로 마지막 대환난이라는 **최종적 “주의 날”**을 예고하는 예표들이었다. 이런 반복 패턴은 하나님이 언제나 죄를 심판하신다는 사실과, 과거 심판들이 앞으로 올 포괄적 심판을 가리키는 징조임을 가르쳐 준다.
전쟁과 우주적 갈등
“경고의 날”, “나팔 소리의 날”과 같이 전쟁을 강조하는 표현들은, 대환난이 영적 전쟁이라는 성경의 큰 주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대환난은 하나님과 사탄, 선과 악,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사이의 우주적 갈등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이다. 요한계시록은 이 영적 차원을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특히 사탄이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기 때문에”(요한계시록 12:12) 크게 분노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다양한 전쟁 관련 용어들은 이 갈등이 군사적·영적·우주적 차원에서 동시에 벌어진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7. 대환난 용어 이해가 주는 실제적 함의
대환난은 교회에게 아직 미래의 사건이지만, 그것을 가리키는 성경 용어들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신자들에게도 중요한 신학적·실천적 의미를 가진다. 성경이 이 기간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풍부한 어휘는, 신앙과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여러 진리를 전달한다.
예언에 대한 문자적 해석 확증
대환난을 가리키는 용어들의 구체성과 다양성은 성경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함을 지지한다. 성경이 수 세기에 걸쳐 여러 저자를 통해, 이렇게 세밀하고 일관된 용어들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이 예언들이 단지 상징적·영적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역사적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다니엘의 칠십 이레”처럼 연·월·일 단위로 정확한 기간을 제시하는 예언은, 상징적인 “이미 지나간 사건”으로 처리하기에 너무 구체적이다.
만일 대환난 예언들을 비유적이거나 과거에 이미 성취된 것으로(과거성 성취를 주장하는 견해처럼) 해석한다면, 성경이 일관되게 사용하는 예언 언어의 평이한 의미를 훼손하게 된다. 용어들의 명확성과 세밀함은, 미래의 실제적 성취를 요구한다.
하나님의 공의 이해
“심판의 날”, “보복의 날”, “진노”와 같은 사법적 용어들은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중대한 진리를 드러낸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무감각하거나, 불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으신다. 모든 불의, 모든 반역,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모든 박해와 폭력이 하나님의 장부에 누적된다. 대환난은 하나님이 결국 모든 계산을 완결하시는 시점이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죄를 용인하는 태도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신자들에게 이는 큰 위로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불의를 목격하며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라고 질문할 때, 대환난에 대한 예언은 궁극적 정의가 실현될 날이 정해져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하나님은 정하신 날에,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신다.
구원의 긴박성 인식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을 큰 환난”, “고통과 환난, 재앙”과 같은 표현들이 보여 주는 대환난의 혹독함은, 복음 전파의 긴급성을 부각한다. 대환난이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주어지는 마지막 경고의 기간이며, 그 심판이 역사상 가장 혹독한 것이라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고린도후서 6:2)이다. 믿지 않는 세상이 맞이하게 될 이 무서운 심판에 비추어 볼 때, 신자들은 더욱 긍휼과 긴박함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교회와 이스라엘의 구분 명확화
“야곱의 환난의 때”, “다니엘의 칠십 이레”처럼 이스라엘을 특정하는 용어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교회를 향해 서로 다른 계획과 경륜을 가지신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대환난은 특별히 이스라엘의 메시아 거부와 불순종을 다루는 시기이며, 그 민족을 회복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프로그램 안에 속해 있다. 반면,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를 영접한 공동체로서, “장차 올 진노에서 건지심을 받은 자들”(데살로니가전서 1:10)이다.
따라서 대환난에서의 보호와 제외에 대한 약속(요한계시록 3:10)은 교회에 주어진 것이며, 대환난의 세부 예언들은 주로 이스라엘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이 구분을 분명히 할 때, 교회가 하나님의 종말 시간표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에 대한 혼란을 줄일 수 있다.
거룩함과 깨어 있음에 대한 동기 부여
예수님은 대환난 예언을 주실 때, 단지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 주려 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깨어 있음을 촉구하셨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 마태복음 24:42
신자들은 휴거를 통해 대환난을 피하게 되겠지만, 곧 닥칠 이 심판의 실재는 지금 우리의 삶에 거룩함과 경건함을 요구한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 베드로후서 3:11
대환난의 확실성은, 우리의 가치관과 우선순위를 재정렬하게 만든다. 장차 모든 것이 불타고 심판을 받을 것이라면, 영원한 것에 투자하는 삶이야말로 참된 지혜이다.
현재의 환난 속에서 얻는 소망
신자들은 오늘날도 여러 형태의 환난과 고난을 겪는다(요한복음 16:33). 그러나 다가올 대환난의 성격을 이해하면, 현재의 고난이 장차 임할 진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사실에서 위로를 얻게 된다. 지금 신자들이 겪는 환난은 징벌적 진노가 아니라, 연단과 성숙을 위한 징계적·훈련적 고난이다.
또한, 현재의 어려움을 대환난의 참혹한 심판들과 비교해 보면, 관점과 감사의 마음이 새로워진다. 지금의 어떤 시련도 앞으로 대환난에서 벌어질 일들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다. 이는 신자들로 하여금 현재의 고난 중에도 감사와 소망을 붙들게 한다.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이해
대환난을 가리키는 다양한 용어들은, 하나님께서 이 시기를 통해 이루실 목적이 단일하지 않고 다층적임을 보여 준다. 곧, 악한 세상에 대한 심판, 이스라엘의 정결과 회복, 하나님의 권능 계시, 사탄의 참된 정체 폭로, 마지막 구원의 기회 제공 등이다. 이처럼 여러 목적이 함께 얽혀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실 때 얼마나 지혜롭게 모든 것을 합력하게 하시는지를 드러낸다.
고난과 심판 문제로 인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대환난에 관한 명확한 목적 진술들은 중요한 답이 된다. 하나님은 임의로 고통을 허락하지 않으시며, 심판조차도 구속 계획 속에서 의미와 목적을 가진다. 실제로 요한계시록 7장 9–14절은 대환난 기간 중에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구원 받는 장면을 보여 준다. 심판의 시기에도 하나님의 긍휼은 여전히 역사하는 것이다.
8. 결론
대환난을 가리키는 성경적 어휘는 구약과 신약 전체에 걸쳐 수십 개에 달하는 다양한 용어와 표현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풍성한 용어들은 중복이나 군더더기가 아니라, 이 전대미문의 심판 시기의 여러 측면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다. “주의 날”, “야곱의 환난의 때”, “큰 환난”, “어린 양의 진노” 등 각 명칭은, 예수님의 재림과 천년왕국 이전의 7년 기간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조명한다.
구약 예언서들은 “주의 날”이라는 대주제 아래, 하나님의 심판, 이스라엘의 환난, 그리고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시는 날이라는 기본 틀을 세웠다. 예수님은 감람산 강화를 통해 이 시기의 시점과 강도를 더 분명히 밝혀 주며, 일반적인 “환난”과 후반부의 “큰 환난”을 구분해 주셨다. 사도들은 특히 요한계시록을 통해, 구약 예언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일곱 인·일곱 나팔·일곱 대접 심판 등 7년 동안 전개될 심판들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추가적인 용어들을 제시하였다.
이 방대한 용어들을 종합하면 몇 가지 핵심 진리가 도출된다.
첫째, 대환난은 단지 상징적 개념이나 이미 지나간 역사 사건이 아니라, 미래에 실제로 7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날 문자적 심판 기간이라는 점이다. 둘째, 이 시기는 반역한 인류에 대한 심판, 이스라엘의 정결과 회복, 하나님의 권능과 사탄의 악함 드러남, 그리고 재림과 천년왕국 이전의 마지막 구원 사역이라는 다양한 목적을 동시에 수행한다. 셋째, 대환난은 전 세계를 포괄하지만, 특별히 “야곱의 환난의 때”로서 이스라엘의 회복에 초점을 맞춘다. 이 기간을 통해 이스라엘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또한 성경의 다양한 용어들은 대환난의 점진적 격화 구조를 보여 준다. 해산의 진통처럼, 심판들은 갈수록 강도와 빈도가 더해지며, 마지막 3년 반의 “큰 환난”으로 절정을 이루게 된다. 인 심판에서 나팔 심판으로, 다시 대접 심판으로 이어지는 이 점증적 구도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누적된 반역이 결국 전면적인 응답을 요구하게 됨을 시사한다.
교회에게 대환난 용어들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교회 시대와 이스라엘 중심의 예언 시간표를 구분하는 데 도움을 주며, 휴거(휴거의 교리)가 대환난 전에 일어남을 뒷받침해 준다. 또한 곧 닥쳐올 심판의 실재를 통해 복음 전파의 긴급성을 부각시키고, 하나님께서 결국 죄를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신자들을 거룩한 삶으로 부른다. 아울러, 신자들이 “노하심에 이르도록 세움을 받지 아니하였다”(데살로니가전서 5:9)는 약속을 통해, 앞으로 임할 진노에서 건지심을 받았다는 위로를 얻게 한다.
결국, 대환난을 묘사하는 성경의 다양한 언어는, 이 기간의 복잡성과 중요성을 반영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중요한 구속사의 단계에 대해 자신의 백성에게 분명하고 풍성하게 알리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해산의 진통”에서 “시험의 때”에 이르기까지, “다니엘의 칠십 이레”에서 “보복의 날”과 “어린 양의 진노”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정확한 용어들을 사용해 앞으로 무엇이, 왜 일어날 것인지를 가르친다. 이 예언적 어휘는 회개하지 않은 세상에는 경고가 되고, 신실한 성도들에게는 위로와 확신이 된다. 역사의 마지막 장들이 기록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시어 땅 위에 그분의 나라를 세우시는 날까지, 하나님은 여전히 모든 역사를 주권 가운데 다스리고 계신다.
FAQ
Q: “환난”과 “큰 환난”은 무엇이 어떻게 다릅니까?
**“환난”**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7년 전체 기간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반면 **“큰 환난”**은 이 7년의 후반부, 곧 중간에 일어나는 “멸망의 가증한 것” 사건(마태복음 24:15) 이후의 후 3년 반을 특정해서 가리킨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은 이 구분을 명확히 하시며, 후반부를 가리켜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을” 정도의 전대미문한 시기로 설명하신다. 이 기간은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극심한 박해와 최악의 심판들이 집중되는 때이다.
Q: 왜 성경은 대환난을 가리켜 이렇게 많은 다른 용어들을 사용합니까?
다양한 성경 용어들은 대환난의 서로 다른 측면과 목적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다. 예를 들어, “온 세상에 임할 시험의 때”는 그 전 세계적 범위를 강조하고, “야곱의 환난의 때”는 이 시기가 특히 이스라엘에 초점이 있음을 보여 준다. “심판의 날”이나 “보복의 날”은 이 기간의 사법적 성격을 강조한다. 각 명칭은 대환난이 단순히 한 가지 목적만 가진 시기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회복, 열방 심판, 하나님의 권능 계시, 마지막 구원 기회 제공 등 여러 목적을 동시에 수행하는 복합적 기간임을 보여 준다.
Q: “주의 날”은 대환난 전체와 같은 것입니까?
“주의 날”은 대환난을 포함하면서도 그보다 더 넓은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주의 날”은 7년 대환난 전체뿐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과 천년왕국의 일부 국면까지 아우른다. 예언 문학에서 “주의 날”은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시고 역사에 직접 개입하시는 특정 시기를 가리키는데, 대환난은 이 반복되는 “주의 날” 주제의 최종적이고 포괄적인 성취라고 할 수 있다.
Q: 성경에 따르면 대환난 기간은 정확히 얼마나 지속됩니까?
성경은 대환난이 정확히 7년 동안 지속된다고 가르친다. 이는 다니엘 9:27의 “마지막 한 이레” 예언을 근거로 한다. 성경은 이 7년을 다시 두 부분의 3년 반으로 나누어 여러 방식으로 표현한다.
-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다니엘 12:7)
- “마흔두 달”(요한계시록 11:2; 13:5)
- “천이백육십 일”(요한계시록 11:3; 12:6)
이 모든 표현은 고대의 360일 기준 예언적 달력을 기준으로 한 3년 반을 가리키며, 전반부와 후반부를 각각 동일한 기간으로 묘사한다.
Q: “해산의 진통”이라는 표현은 대환난의 구조에 대해 무엇을 알려 줍니까?
“해산의 진통” 비유는 대환난의 심판들이 점점 더 빈번하고 격렬해지는 구조를 갖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해산의 진통이 출산이 가까울수록 강도와 빈도가 증가하듯, 대환난의 재앙들도 점점 더 치열해진다.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인 심판 다음에 더 강력한 일곱 나팔 심판,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참혹한 일곱 대접 심판이 이어지는 구조가 바로 이 “산고의 점진성”을 반영한다.
또한 해산의 진통은 결과의 필연성을 시사한다. 산고가 시작되면 결국 출산으로 이어지듯, 대환난이 시작되면 반드시 예수님의 재림과 천년왕국이라는 “새 시대의 탄생”으로 귀결된다. 이는 대환난이 우연한 재난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완성을 향해 반드시 지나가야 할 예정된 단계임을 보여 준다.
자주 묻는 질문
“환난”과 “큰 환난”은 무엇이 어떻게 다릅니까?
왜 성경은 대환난을 가리켜 이렇게 많은 다른 용어들을 사용합니까?
“주의 날”은 대환난 전체와 같은 것입니까?
성경에 따르면 대환난 기간은 정확히 얼마나 지속됩니까?
“해산의 진통”이라는 표현은 대환난의 구조에 대해 무엇을 알려 줍니까?
L. A. C.
종말론을 전문으로 하는 신학자로서, 신자들이 하나님의 예언적 말씀을 이해하도록 돕는 데 헌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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