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전 휴거론 검토
대환난 전 휴거론(Pre‑Tribulationalism)의 검토
1. 서론
대환난 전 휴거론은 교회의 휴거(Rapture)—살아 있는 성도와 죽은 성도가 공중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 끌어올려지는 사건(데살로니가전서 4:13–18)—가 장차 임할 7년 대환난(다니엘의 일흔째 이레, 다니엘 9:24–27) 이전에 일어난다고 가르친다. 이 전대미문의 심판 기간 이후,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과 함께 영광 가운데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천년왕국을 세우신다(요한계시록 19–20장).
이 글은 대환난 전 휴거 입장을 성경적으로 검토하면서 그 근거와 핵심 논증들을 살펴본다. 다른 견해들(대환난 중 휴거, 대환난 후 휴거, 진노 전 휴거, 부분 휴거)이 존재하지만, 여기서는 특별히 일관된 문자적 해석과 경륜적(dispensational) 해석을 유지할 때, 성경 전체와 가장 조화롭게 맞는다고 주장되는 대환난 이전 휴거의 정당성을 다룬다.
2.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별
대환난 전 휴거론의 핵심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구속사와 예언 계획 속에서 이스라엘과 교회를 엄격히 구별한다는 점이다.
2.1 교회: 새롭고 독특한 공동체
신약성경은 교회를 구약 시대에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사도 시대에 계시된 **“비밀”**로 묘사한다(에베소서 3:3–6; 골로새서 1:26–27). 이 시대의 성도들은 성령의 세례를 통해 “한 몸” 안으로 연합된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한 몸이 되게 하시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 고린도전서 12:13
이렇게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의 몸은 오순절(사도행전 2장)에서 시작되었고, 휴거 때 그 수가 충만해진다. 구약의 어느 본문도 이 교회의 몸을 분명히 계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교회는 서로 대체되거나 혼동될 수 없는 구별된 공동체이다.
2.2 다니엘의 일흔째 이레와 이스라엘
다니엘 9:24–27의 일흔 이레 예언은 분명히 다음을 대상으로 한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 다니엘 9:24
“네 백성”은 이스라엘이고, “네 거룩한 성”은 예루살렘이다. 처음 예순아홉 이레(7년 단위의 69개 기간)는 메시아의 초림과 그 분의 거절로 끝난다(다니엘 9:26). 아직 성취되지 않은 일흔째 이레, 곧 미래의 7년 기간은 남아 있으며, 이는 이스라엘의 최종적인 회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주목할 점은, 처음 69이레 동안 교회는 존재하지 않았고, 이 예언 어디에도 교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흔째 이레 또한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기간이지, 교회가 중심인 기간이 아니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대환난 전 휴거론은 이 구조와 잘 맞는다. 즉, **교회 시대는 69이레와 70이레 사이에 끼어든 ‘괄호(Parenthesis)’**와 같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의 언약적 관계를 다시 본격적으로 진행하시기 전에, 교회는 완성되어 먼저 제거(휴거) 된다는 것이다.
2.3 대환난의 목적
성경은 대환난의 성격을 이스라엘 중심의 기간으로 일관되게 묘사한다.
- “야곱의 환난 때” (예레미야 30:7)
- 이 기간의 결말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회개하고 돌이키게 됨 (스가랴 12:10; 로마서 11:26–27)
이 대환난의 주요 목적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 이스라엘을 정결케 하여 메시아를 영접하도록 준비시키는 것
- 불신 세상(요한계시록의 ‘땅에 사는 자들’) 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집행하는 것
반면,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신분적으로 거룩하게 된 공동체이다(로마서 8:1; 에베소서 1:3–7). 그러므로 교회는 이 진노의 대상이 아니다.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별은 일흔째 이레가 시작되기 전에 교회가 제거되어야 할 구조적 이유를 제공한다.
3. 하나님의 진노에서의 면제
신약성경은 교회 시대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진노에 정해진 바가 아니다라고 명확히 약속한다.
3.1 데살로니가전서: 임할 진노에서 건지시는 예수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회심한 후 가진 소망을 다음과 같이 칭찬한다.
“…하늘로부터 그의 아들이 오시기를 기다리니 곧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이, 장래의 진노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 데살로니가전서 1:10
또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진노에 이르도록 세우지 아니하시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셨느니라.”
— 데살로니가전서 5:9
문맥을 보면,
- 데살로니가전서 4:13–18은 휴거를 다룬다.
- 데살로니가전서 5:1–11은 주의 날(주님의 날)—불신 세상에 갑자기 임하는 멸망과 어두움의 때—을 다룬다.
여기서 믿는 자들과 멸망받는 자들이 뚜렷이 구별된다(특히 데살로니가전서 5:3–5의 “그들이… 그들에게”와 “너희는… 우리는” 사이의 대조). 교회의 운명은 진노가 아니라 구원이며, 그러한 소망으로 “서로 위로하라”는 권면이 주어진다(4:18; 5:11). 이는 교회가 장차 임할 진노로부터 미리 제거된다는 개념과 잘 조화되며, 대환난 이전 휴거가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이 된다.
3.2 요한계시록 3:10 – 시험의 때에서 지키심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어진 그리스도의 약속은 대표적이며 프로그램적이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 요한계시록 3:10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다음과 같다.
- 약속은 단지 시험 가운데에서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는 것이다. 즉, 그 시간 자체(“때”, “hour”)에서 지키심을 의미한다.
- 그 범위는 “온 세상”이다. 이는 국지적인 박해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시험과 심판으로, 요한계시록 6–19장에 나오는 대환난과 정확히 상응한다.
- 이 보호의 수단은 곧 “내가 속히 오리니”(요한계시록 3:11)라는 주님의 오심과 연결된다.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표현 **“테레오 에크(tēreō ek)”**는 “그 안에서 보호”라기보다, **“그 밖으로 지켜 내다, 그로부터 건져내다”**는 뜻에 더 가깝다. 신약에서 동일하게 쓰인 다른 예(요한복음 17:15)도 “악에 빠진 상태 속에서 보호하소서”가 아니라, “악으로부터 지켜 주소서”라는 의미이다.
더욱이, 대환난 기간 동안 수많은 성도들이 순교한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요한계시록 6:9–11; 7:9–14).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3:10의 약속은 “어떤 성도도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일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교회 전체로서의 공동체가 그 시간대 자체에서 제외된다”, 즉 대환난이라는 시간대 이전에 교회가 제거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일관된다.
따라서 교회는 단지 “가장 극심한 진노의 국면”만이 아니라, “그 진노의 시간 자체”로부터 면제를 약속받는다. 이는 7년 대환난 시작 이전에 휴거가 일어난다는 해석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4.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 소망
대환난 전 휴거론은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오심의 임박성(임박한 가능성)—곧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가장 온전히 보존한다.
4.1 신약의 기대 언어
신약성경은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한다.
- “하늘로부터 그의 아들이 오시기를 기다리라” (데살로니가전서 1:10)
- “구원받을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립보서 3:20)
-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라” (디도서 2:13)
-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는 사실을 따라 살 것 (빌립보서 4:5)
-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야고보서 5:8–9)
초대 교회의 아람어 신앙고백인 “마라나타”(고린도전서 16:22, “주여, 오시옵소서”)는 언제라도 오실 수 있는 주님의 임박성을 갈망하는 고백이다. 신약 어디에서도 휴거가 반드시 어떤 다른 예언적 사건 이후에만 가능하다고 못박지 않는다.
4.2 임박성과 다른 시기설의 충돌
대환난 전 휴거를 제외한 모든 견해는, 휴거 이전에 반드시 이미 예언된 특정 사건들이 일어나야 한다고 전제한다.
- 대환난 중 휴거(Mid‑trib): 최소 3년 반 동안의 초기 심판과 적그리스도의 부상 등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
- 진노 전 휴거(Pre‑wrath): 대환난의 상당 부분(대략 5년 이상)이 먼저 진행되어야 한다.
- 대환난 후 휴거(Post‑trib): 적그리스도의 성전 모독(멸망의 가증한 것), 나팔·대접 심판, 아마겟돈 전쟁 등 전체 대환난이 먼저 지나가야 한다.
이러한 구도에서는, 성도들이 진정으로 **“주님이 오늘 오실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없고, 반드시 “주님은 X, Y, Z가 일어난 후에야 오실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이는 신약성경이 보여주는 항상적인 긴장감과 임박성의 태도와 모순된다.
오직 대환난 전 휴거만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오심이라는 신약의 가르침을 온전히 지켜 낸다.
5. 요한계시록 4–19장에서 교회의 부재
요한계시록의 구조적 전개는 대환난 전 휴거를 강하게 시사한다.
5.1 요한계시록에서의 “에클레시아”(교회)
- 요한계시록 1–3장: **“에클레시아(교회)”**라는 단어가 19회 등장하며, 실제 1세기의 일곱 교회이면서 동시에 교회 시대 전체를 대표하는 메시지로 기록된다.
- 요한계시록 4–19장: 지상에 있는 교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 요한계시록 22:16: 결론부에서 다시 **“교회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4장 이후부터 초점은 교회에서 **이스라엘, 열방,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인침 받은 144,000명, 그리고 ‘땅에 거하는 자들’**로 옮겨진다. 인봉, 나팔, 대접 심판은 전 지구적인 심판을 묘사하지만, 이 기간 동안 지상에서의 교회의 사역이나 존재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만일 교회가 이 기간에 지상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한다면, 이와 같은 완전한 침묵은 매우 설명하기 어렵다.
5.2 이십사 장로는 누구인가?
많은 학자들이 하나님 보좌 주위의 이십사 장로들(요한계시록 4:4, 10; 5:5–10; 7:11–13; 11:16; 19:4)을 영화롭게 된 교회의 대표로 이해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그들은 **“장로들”**이라 불리는데, 이는 특히 신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교회의 직분과 관련된 호칭이다.
- 그들은 보좌들 위에 앉아 있다. 이는 이기는 자들에게 함께 왕 노릇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신 것과 일치한다(요한계시록 3:21).
- 그들은 흰 옷을 입고 면류관을 쓰고 있다. 이는 교회 시대 성도들에게 약속된 상급과 의의 옷과 같은 이미지이다(요한계시록 2:10; 3:5, 18; 19:7–8).
- 그들이 부르는 새 노래는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요한계시록 5:9–10)라는 내용으로, 다민족적 교회의 특성과 정확히 부합한다.
- 그들은 천사들과 구별되어 언급된다(요한계시록 5:11).
만일 이 이십사 장로가 **인봉 심판이 시작되기 이전(요한계시록 6장 전)**에 이미 하늘에 있는 완성된 교회를 상징한다면, 결론은 분명하다. 교회는 대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휴거되어 하늘에 있는 것이다.
6. “막는 자”와 불법의 사람의 나타남
데살로니가후서 2장은 **적그리스도(불법의 사람)**의 나타남과, 그 전에 존재하는 **억제하는 세력(막는 자)**의 제거를 연결시킨다.
“너희는 이제 그가 그 때에 나타나게 하려고 막는 것을 안다.… 막는 자가 세상에서 옮겨질 때까지는 막을 것이요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 데살로니가후서 2:6–8 요지
여기서 “막는 자”는
- 현재 역사 속에서 실제로 불법과 적그리스도의 완전한 발현을 억제하고 있고,
- 장차 “가운데서 옮겨질 때까지” 계속 막다가,
- 그가 옮겨지고 난 뒤에야 불법의 사람이 드러나게 된다.
이 “막는 자”에 대한 가장 일관된 해석은, 성령께서 교회를 통하여 역사 가운데 행사하시는 억제 사역이다. 교회가 휴거될 때, 지상에서의 교회 공동체를 통한 이 독특한 억제 사역이 끝나게 되고, 그 결과 적그리스도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다니엘의 일흔째 이레(대환난)**가 시작된다.
이 순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교회의 휴거 → 성령의 억제 사역(막는 자)의 제거 → 불법한 자(적그리스도)의 출현 → 주의 날(대환난)의 개시
이 구조는 대환난 전 휴거론과 정확히 부합하며, 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주의 날이 이미 이르렀다”(2:2)는 거짓 주장에 심히 요동하고 두려워했는지 설명해 준다. 그들은 자신들이 먼저 제거(휴거) 될 것으로 기대했지, 그 날 안에 남아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7. 휴거와 재림: 하나의 재림, 두 국면
성경은 그리스도의 미래의 오심을 두 가지 상호 연관된 국면으로 묘사한다.
- 휴거(Rapture):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영접하시기 위하여 공중으로 오시고, 성도들이 그분께로 끌어올려져 아버지 집으로 가는 사건 (요한복음 14:1–3; 데살로니가전서 4:13–18).
- 재림(Second Coming)·계시(Revelation): 그리스도께서 성도들과 함께 이 땅에 내려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왕국을 세우시는 사건 (스가랴 14:4–5; 마태복음 24:29–31; 요한계시록 19:11–16).
두 국면을 비교해 보면 분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 구분 | 휴거 (데살전 4장; 고전 15장) | 재림 (마 24장; 계 19장) |
|---|---|---|
| 방향 | 그리스도가 공중까지 오시고 성도들이 위로 들려감 | 그리스도가 땅으로 강림 |
| 대상 | 구원받은 성도들 | 온 인류 전체가 관여 |
| 초점 | 부활과 변화, 성도들의 위로와 소망 | 심판과 왕국의 수립 |
| 표적 | 임박, 직접적인 표적 언급 없음 | 여러 예언된 표적(징조)들이 먼저 등장 |
| 목적지 | 성도들이 아버지 집으로 들려감 |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땅에 내려와 통치 |
이 차이점들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하나의 재림(Second Coming)의 두 국면—먼저 성도를 위하여, 그 다음 성도들과 함께—으로 이해할 때 가장 잘 조화된다.
대환난 전 휴거론은 이 두 국면의 차이와 각각의 목회적 강조점—휴거에서는 위로와 소망, 재림에서는 경고와 심판—을 가장 잘 존중한다.
8.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주요 성경적 증거들을 종합해 보면, **대환난 전 휴거론(Pre‑Tribulationalism)**은 휴거의 시기를 이해하는 여러 견해 가운데 가장 일관되고 성경 본문에 충실한 입장으로 부각된다.
-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별을 온전히 인정하여, 다니엘의 일흔째 이레를 이스라엘과 열방 중심의 기간으로 유지한다.
- 교회가 하나님의 진노에서 면제되었다는 약속과, 온 세상에 임할 시험의 “때”에서 지키신다는 요한계시록 3:10의 구체적 약속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 그리스도의 오심을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임박한 소망으로 가르치는 신약의 강조점을 훼손하지 않는다.
- 요한계시록 4–19장에서 지상 교회의 부재와, 하늘의 이십사 장로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설명한다.
-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막는 자”와 불법의 사람의 출현에 대한 가르침을, 교회의 휴거 후 적그리스도 출현이라는 시간 구조와 조화시킨다.
- 그리스도의 오심을 **두 국면(먼저 성도를 위하여 공중으로, 그 다음 성도들과 함께 지상으로)**으로 이해하는 재림의 이중 구조에 가장 잘 부합한다.
다른 휴거 시기설들도 나름의 논증을 제시하지만, 대개는
-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별을 흐리게 하거나,
- 임박성을 약화시키거나,
- 천년왕국에 자연 몸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유입되는지,
- 그리스도의 심판대와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시간상 어디에 위치하는지,
- 왜 대환난 핵심 본문들에서 교회가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는지
와 같은 시간적·신학적 난점을 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일관된 문자적, 복음적인 예언 해석의 관점에서 볼 때, 대환난 전 휴거는 단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모으시고, 그 후에 반역한 세상 위에 최후의 심판을 내리시며, 다시 이스라엘에게 언약적 긍휼을 베푸시는가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성경적으로 일관된 설명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마땅히 거룩한 기대와 소망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 곧,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 디도서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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