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 견해 비교
휴거 시기 논쟁 비교
1. 서론
복음주의 종말론 안에서, 휴거의 시기를 대환난과 어떻게 관련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만큼 논쟁적인 주제는 거의 없다. 모든 정통적 견해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백성을 데리러 오신다는 사건(휴거)과, 심판하시고 통치하시기 위해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신다는 사건(재림)을 함께 인정한다. 논쟁의 본질은 다니엘의 칠십 이레(단 9:24–27)와 요한계시록 6–19장에 묘사된 하나님의 진노의 쏟아짐과 관련하여, 언제 휴거가 일어나는가에 있다.
이 글은 다섯 가지 주요 휴거 시기 견해를 비교한다.
- 환난전 휴거(Pretribulational)
- 환난중 휴거(Midtribulational)
- 환난후 휴거(Posttribulational)
- 부분 휴거(Partial Rapture)
- 진노전 휴거(Pre‑wrath)
이들을 나란히 비교한 후, 환난전 휴거가 성경 전체의 자료를 가장 잘 설명하는 이유를 살펴본다.
2. 다섯 가지 주요 휴거 견해 개관
2.1 환난전 휴거
정의. 그리스도께서 다니엘의 칠십 이레 가운데 마지막 한 이레, 곧 7년 대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자신의 교회를 휴거하신다는 견해이다(살전 4:13–18; 계 3:10).
기본 순서.
- 교회의 휴거(살아 있는 성도의 변화와 교회 시대에 죽은 성도의 부활).
- 7년 대환난(하나님의 진노, 이스라엘의 정결과 연단, 전 세계적 심판).
- 영화롭게 된 성도들과 함께하는 영광 중의 재림.
- 천년왕국.
주요 특징.
- 휴거와 재림은 둘 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속하지만, 최소 7년 이상으로 구분되는 두 단계로 이해된다.
- 교회는 시험의 때(계 3:10), 곧 “임박한 진노에서” 면제된다(살전 1:10; 5:9).
- 여호와의 날(주의 날)은 대환난과 함께 시작되며, 휴거는 징조 없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임박한 사건으로 본다.
2.2 환난중 휴거
정의. 휴거는 7년 대환난의 중간 시점, 곧 3년 반이 지난 후, “큰 환난”(마 24:21; 후반부 3년 반)이 시작되기 직전에 일어난다고 보는 견해이다.
기본 순서.
- 칠십 이레의 전반부 – “재난의 시작”(마 24:8)으로, 주로 인간의 분노와 혼란의 시기로 본다.
- 중간 시점에서의 휴거. 흔히 일곱째 나팔(계 11:15)과 두 증인의 부활(계 11:11–12)에 연결시킨다.
- 후반부 – “큰 환난”(마 24:21)으로, 본격적인 하나님의 진노의 시기.
- 환난 끝에 재림.
주요 특징.
- 교회는 환난의 전반부는 통과하지만, 하나님의 진노가 본격적으로 쏟아지는 후반부 직전에 제거된다고 본다.
- “마지막 나팔”(고전 15:52)을 계 11:15의 일곱째 나팔과 동일시한다.
- 임박성(징조 없는 언제든지 오심)을 부정하거나 상당히 수정한다.
2.3 환난후 휴거
정의. 휴거와 재림은 동일한 사건의 두 측면이며, 모두 환난의 끝에 이루어진다고 보는 견해이다. 교회는 대환난 전체를 통과한 뒤,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공중으로 들림 받고, 즉시 그분과 함께 땅으로 내려온다고 본다.
기본 순서.
- 교회는 환난 기간 내내 지상에 존재한다.
- 재림 시점에, 믿는 자들이 공중으로 끌어올려져 “공중에서 주를 영접”(살전 4:17)하고, 곧바로 그분과 함께 땅으로 내려온다.
- 민족 심판, 성도의 부활, 천년왕국의 설립.
주요 특징.
- 휴거와 재림은 시간적으로 구분되지 않고, 하나의 재림 사건 안의 두 국면에 불과하다고 본다.
- 대환난은 사탄의 분노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이기도 하며,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진노의 때로부터 건져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진노 가운데를 통과하도록 보호하신다고 본다.
- 임박성을 최소화하거나 재정의하는 경향이 있다(그리스도는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각종 환난의 징조가 일어난 후에야 오실 수 있다고 본다; 살후 2:3–4; 마 24장).
2.4 부분 휴거설
정의. 깨어 있고 충성된 신자들만이 환난 전에 처음으로 휴거되고, 육신적이거나 준비되지 않은 신자들은 남겨져 환난의 전부 혹은 일부를 통과하며, 그들의 영적 상태가 준비될 때마다 나중의 여러 단계에서 순차적으로 휴거된다고 보는 견해이다.
기본 순서.
- 대환난 전에 “이긴 자” 신자들의 첫 번째 휴거.
- 환난 중 여러 시점에서, 영적으로 준비된 다른 신자들이 추가로 휴거.
- 어떤 이들은 환난 끝에야 휴거되며, 어떤 견해는 불충성한 신자가 천년왕국의 복에서 제외된다고 보기도 한다.
주요 특징.
- 휴거를 모든 그리스도인의 은혜로운 특권이 아니라, 상급으로 간주한다.
- “깨어 있으라”는 경고 구절들(마 24:40–51; 25:1–13; 눅 21:36 등)을, 휴거에 참예하기 위한 조건으로 해석한다.
- 그리스도의 몸을 둘로 나눈다: 휴거된 성도들과 남겨진 성도들.
2.5 진노전 휴거설 (Pre‑Wrath)
정의. 교회는 “재난의 시작”과 큰 환난을 모두 통과하지만, 하나님의 본격적인 종말론적 진노가 쏟아지기 직전, 곧 칠십 이레의 마지막 4분의 1 지점 즈음에 휴거된다고 보는 견해이다.
기본 순서.
- 전반부(3년 반): “진통의 시작”(마 24:8) – 인간과 사탄의 분노의 시기.
- 중간: 멸망의 가증한 것, 적그리스도의 이스라엘 박해.
- 큰 환난(아직 하나님의 진노는 시작되지 않았다고 봄). 계 6장의 첫째 인에서 여섯째 인까지와 연결.
- 여섯째 인 이후(계 6:12–17)에 휴거가 일어나고, 이어서 일곱째 인과 나팔 재앙과 함께 여호와의 날(주의 날)이 시작된다고 본다.
- 여호와의 날(칠십 이레의 마지막 4분의 1 + 약 30–45일; 단 12:11–12 참조): 나팔과 대접 재앙을 통한 하나님의 진노.
- 영광 중 재림과 왕국 도래.
주요 특징.
- 사탄/적그리스도의 분노와 하나님의 진노를 날카롭게 구분한다.
- 여호와의 날은 대환난 후반이 상당 부분 지난 뒤에야 시작된다고 본다.
- 휴거는 실제로 징조 없는 사건이 아니며, 특히 여섯째 인의 개봉과 같은 칠십 이레 내의 특정 사건들에 의해 시기가 규정된다고 본다.
3. 비교의 틀
아래 표는 각 견해의 주요 개요를 요약한 것이다.
3.1 비교 표
| 구분 | 환난전 휴거 | 환난중 휴거 | 환난후 휴거 | 부분 휴거 | 진노전 휴거 |
|---|---|---|---|---|---|
| 휴거 시기 | 7년 대환난이 시작되기 전 | 중간 시점(3년 반 후)에 가까운 시점 | 대환난의 끝, 재림과 동시에 | 여러 단계: 첫 휴거는 환난 전, 이후 환난 중에 순차적으로 | 칠십 이레의 약 4분의 3 지점, 여섯째 인 이후 |
| 임박성(Any‑moment 기대) | 진정한 언제든지 오심: 선행되어야 할 예언적 사건이 없음(빌 4:5; 살전 1:10; 딛 2:13) | 부정 혹은 약화: 여러 예언된 징조들이 먼저 일어나야 함 | 부정: 적그리스도, 배교, 환난의 징조들이 선행되어야 함(살후 2:3–4; 마 24장) | 첫 휴거는 영적으로 깨어 있는 신자에게만 임박; 다른 신자들은 이후 휴거를 기다림 | 조건부 임박성: 특정 인들과 징조 이전에는 휴거 불가; 실질적 임박성은 재정의되는 경우 많음 |
| 누가 휴거되는가? |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교회 시대 성도,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 모두(살전 4:16–17; 고전 15:51–52) | 중간 시점에 살아 있는 모든 교회 시대 성도 + 부활한 성도 | 환난 끝에 있는 모든 신자 | 처음에는 충성되고 깨어 있는 신자만, 육신적인 신자는 나중에 | 진노 직전 시점의 모든 살아 있는 교회 시대 신자 |
| 하나님의 진노와의 관계 | 교회는 전 세계적 시험의 **때(시기)**에서 보존됨(계 3:10); 첫째 인 이전, 곧 환난 전 휴거 | 교회는 진노가 본격화되지 않은 전반부에 머물고,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기 직전 휴거 | 교회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통과하지만, 그 가운데서 보존만 받음 | 충성된 신자는 진노를 피하고, 불충한 신자는 징계로서 환난을 통과 | 교회는 1–6번째 인(인간/사탄의 분노)을 경험한 뒤, 나팔/대접 진노 이전에 휴거 |
| 대표적 핵심 성구 | 살전 4:13–18; 5:1–11; 고전 15:51–58; 계 3:10; 요 14:1–3 | 고전 15:52(마지막 나팔); 계 11:15(일곱째 나팔); 단 7:25; 9:27; 12:7, 11; 계 11–13장 | 마 24:29–31; 24:37–41; 살후 1:6–10; 2:1–4; 계 20:4–6 | 마 24:40–51; 25:1–13; 눅 21:36; 고전 9:27; 빌 3:11; 히 9:28(이 견해에서의 해석에 따라) | 마 24:21–31; 계 6:12–17; 7:9–14; 살전 1:10; 5:9 |
4. 각 견해 평가
4.1 환난전 휴거
강점.
-
임박성 교훈과 일치한다. 신약의 여러 본문은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오심을 늘 기대하며 살라고 권면한다(고전 1:7; 빌 3:20; 4:5; 살전 1:10; 딛 2:13; 약 5:7–9; 계 22:20). 환난전 휴거에 따르면, 휴거 이전에 반드시 일어나야 할 예언적 사건은 없으므로, 성도는 실제로 “예수님이 오늘 오실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
요한계시록 6–18장에서 교회의 부재를 설명한다. “교회”(ἐκκλησία)는 계 1–3장에서 열아홉 번, 그리고 22:16에서 한 번 등장하지만, 대환난을 상세히 다루는 6–18장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성도들”은 등장한다(예: 계 7:14). 이는 교회 시대 성도라기보다는 대환난 성도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
계 3:10을 문자 그대로 존중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충성된 교회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하신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 요한계시록 3:10여기서 “지켜 … 면하게 하리니”(τηρέω ἐκ)는, 그 때(시기)에 들어가지 않도록 지키는 것, 곧 그 시간대 자체에서 완전히 제외시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 약속은 단지 시험(환난) 자체만이 아니라, 그 시험의 때(시기) 전체에서 보호하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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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진노 면제 약속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신자들은 “하늘로부터 그의 아들이 오시기를 기다리니 곧 우리를 장차 임할 진노에서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10).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진노에 넘기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살전 5:9). 요한계시록에서 인, 나팔, 대접 재앙은 모두 어린 양의 주권 아래에서 나오며(계 6:1; 8:1–2), 그러므로 대환난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이지, 그 마지막 부분만 진노인 것이 아니다(계 6:16–17 참조).
-
그리스도의 몸의 연합성을 보존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가 동시에 변화되고(고전 15:51–52),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 그 후에 살아 남은 자도 함께 공중으로 끌어올려”진다(살전 4:16–17). 그리스도의 몸 안에 계급이나 등급을 나눌 근거가 없다(고전 12:12–13 참조).
-
하늘에서의 그리스도 심판대와 어린 양 혼인 잔치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해 준다. 휴거와 재림 사이에, 교회 성도들은 하늘에서 심판과 상급을 받고(고전 3:10–15; 고후 5:10), 신부로 준비되었다고 묘사된다(계 19:7–8). 환난전 휴거는 이들 사건이 하늘에서 충분한 기간 동안 진행될 수 있는 “간격(gap)”을 자연스럽게 제공한다. 반면 환난후 휴거는 “올라갔다가 곧 내려오는” 구조이므로, 이러한 사건들을 한 순간 안에 압축해 버리는 문제가 생긴다.
-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자연 몸의 인구를 설명해 준다. 환난전 휴거에 따르면, 대환난 기간 중 많은 이가 회심하며, 살아 남은 자들은 자연적인 몸을 가진 채로 왕국에 들어간다(사 65:20–23; 슥 14:16–19). 그러나 환난후 휴거에 따르면, 재림 시점에 모든 믿는 자가 영화롭게 되므로, 지상에서 다시 번성하고 증식할 자연 몸의 성도들이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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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논리를 잘 설명한다. “불법의 사람”(적그리스도)은 “막는 자”가 옮겨지기 전까지 드러날 수 없다(살후 2:6–7). 바울은 이 사실을 근거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아직 주의 날 가운데 있지 않음을 확신시켜 준다. 이 “막는 자”는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의 독특한 억제 사역으로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으며, 이 억제의 제거는 환난전 휴거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자주 제기되는 비판(약점으로 주장되는 점들).
- 어떤 이들은 환난전 휴거가 하나의 “결정적 증거 구절”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 때로는 “도피주의” 혹은 역사적으로 늦게 정립된 교리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러나 교리 형성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실질적인 성경적 반박이라기보다는, 체계신학적 종합의 과정을 간과한 주장에 가깝다. 삼위일체 교리처럼, 많은 핵심 교리도 하나의 단일 구절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자료를 종합하여 정립되었다.
4.2 환난중 휴거
주요 주장.
- “마지막 나팔”(고전 15:52)을 계 11:15의 일곱째 나팔과 동일시한다.
- 두 증인(계 11:3–12)을 교회의 대표로 보고, 그들의 승천을 환난중 휴거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 진노의 지연. 하나님의 진노는 후반부 혹은 마지막 인/나팔 때(예: 여섯째 혹은 일곱째)부터 시작되므로, 교회는 전반부에 지상에 남아 있어도 된다고 본다.
주요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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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의 동일시는 해석적으로 약하다. 계 11:15의 일곱째 나팔은 더 많은 심판을 예고하는 나팔이며, 천사가 분다. 반면 고전 15:52과 살전 4:16의 “마지막 나팔”은 교회를 축복으로 부르는 “하나님의 나팔”이다. 두 나팔 사이에 본문 자체가 제시하는 명확한 연결은 없다. “마지막”이란 말도 모든 시대의 나팔 재앙 중 마지막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종말론적 나팔 중 마지막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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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노는 이미 더 일찍 시작된다. 계 6:16–17에 따르면, 여섯째 인이 열릴 즈음에 이미 지상 거민들은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라고 고백한다. 또 칼, 기근, 사망, 짐승의 네 가지 심판(계 6:8)은 구약에서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적 진노의 표지로 제시된 것과 동일하다(겔 14:21 등). 그러므로 환난의 전반부도 이미 하나님의 진노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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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박성을 여전히 훼손한다. 휴거가 반드시 중간 시점에 일어나야 한다면, 이스라엘과의 언약, 여러 인 심판 등 중요한 사건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교회는 “언제든지 오실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바라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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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시점 휴거를 직접 가르치는 구절이 없다. 다니엘 9:27, 마태복음 24:15, 요한계시록 11–13장 등 중간 시점 사건들을 설명하는 본문들 어느 곳도, 교회의 변화와 휴거를 언급하지 않는다.
4.3 환난후 휴거
주요 주장.
- 하나님의 백성의 일체성과 종말의 단일한 절정 사건(단일한 재림)을 강조한다.
- 마 24:29–31, 살전 4:16–17, 살후 2:1–4, 계 20:4–6을, 환난 후 단 한 번의 부활/휴거 사건을 가르치는 본문으로 해석한다.
- “영접하러”(ἀπάντησις, 살전 4:17)가, 도시의 사절단이 귀빈을 영접하러 나가 곧바로 그를 호위하여 도시로 들어오는 외교적 용어라고 주장한다.
주요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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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박성이 사실상 무효가 된다. 적그리스도의 계시, 멸망의 가증한 것, 전 세계적 심판 등 수많은 징조가 먼저 일어나야 하므로, 초대 교회나 그 이후 모든 세대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까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마지막 세대를 제외한 모든 세대에게 “언제든지 오심”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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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갔다가 곧 내려오는” 시나리오는 본문과 긴장을 일으킨다. 살전 4장은 성도들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사실을 말하지만, 즉각적으로 지상으로 되돌아온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또한 요 14:1–3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아버지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셨지, 공중에서 만나 곧바로 땅으로 내려오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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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일어나는 필수 사건들에 시간이 부족하다. 그리스도 심판대와 어린 양의 혼인(계 19:7–10)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 만약 교회가 재림 순간에 휴거되어 곧바로 땅으로 돌아온다면, 이 사건들이 진행될 실질적인 “하늘의 기간”이 확보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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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의 자연 몸 인구 문제. 앞서 언급했듯이, 환난후 휴거에서는 주님의 오심과 동시에 모든 신자가 영화롭게 되므로, 구약과 신약이 묘사하는 바와 같이(사 65장, 슥 14장 등) 자연 몸을 지닌 채 왕국에 들어가고 그 안에서 출산·성장하는 성도를 설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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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염소의 심판이 사실상 중복된다. 만일 모든 신자가 바로 직전에 휴거되어 영화롭게 되었다면, 마 25:31–46의 양과 염소의 구분은 상당 부분 이미 이루어졌을 것이다. 별도의 지상 심판 사건으로서의 의미가 약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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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9장에는 휴거가 언급되지 않는다. 재림을 가장 상세히 묘사하는 계 19:11–21은 그리스도의 지상 강림을 자세히 기록하지만, 그 시점에서 성도들의 변화와 공중으로의 들림을 동반한다는 언급은 전혀 없다.
4.4 부분 휴거설
주요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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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말미암는 칭의를 훼손한다. 휴거 참여를 행위와 깨어 있음에 조건화함으로써, 구원의 중심적 소망의 한 요소를 “공로에 대한 상급”으로 바꾸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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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5:51과 살전 4:16–17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바울은 “우리 모두가 변화할 것이라”(고전 15:51)고 말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과 “우리 살아 남은 자들”이 함께 공중으로 끌어올려진다고 한다(살전 4:16–17). 그리스도의 몸 안에 부분적 휴거 혹은 단계적 휴거를 위한 구분은 전혀 상정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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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몸과 신부를 분열시킨다. 성경은 하나의 몸과 하나의 신부를 제시한다. 그런데 교회의 일부는 하늘에서 영화롭게 되고, 다른 일부는 여전히 지상에서 환난을 겪는다면, 이것은 에베소서 4:4, 5:25–27, 골 3:15가 말하는 교회의 일체성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것이다.
-
깨어 있으라는 본문들을 오용한다. 마태복음 24–25장, 누가복음 21:36, 히브리서 9:28과 같은 본문들은, 환난 중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이거나 모든 신자에게 주어진 일반적인 경고일 뿐, 휴거가 영적 엘리트에게만 주어지는 조건부 특권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4.5 진노전 휴거설 (Pre‑Wrath)
주요 주장.
- 신자들이 진노에서 면제됨(살전 1:10; 5:9)을 강조한다.
- 계 6장의 1–6번째 인을 인간과 사탄의 분노로 보고, 하나님의 진노는 계 8:1의 일곱째 인과 나팔 재앙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주요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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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 이레를 인위적으로 세 구간으로 나눈다. 성경은 일관되게 칠십 이레 마지막 한 이레를 **두 반(3년 반 + 3년 반)**으로 구분한다(단 9:27; 7:25; 12:7; 계 11:2–3; 12:6, 14; 13:5). 그런데 이 견해는 “재난의 시작”, “큰 환난”, “여호와의 날”이라는 서로 겹치지 않는 세 구간으로 나누어, 본문이 제공하지 않는 구조를 텍스트 위에 덧씌우는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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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날(주의 날)의 범위가 지나치게 축소된다. 구약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날을 종종 환난의 심판과 그 이후의 왕국을 모두 포괄하는 넓은 개념으로 묘사한다(욜 2–3장; 슥 14장 등). 여호와의 날을 칠십 이레의 마지막 4분의 1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해석적으로 취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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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해산의 고통)은 초반부터 시작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진통”(ὠδίν, 마 24:8)은 계 6장 초반의 인 심판과 대응하며, 바울도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여 주의 날이 임하는 시작을 묘사한다(살전 5:3). 이는 하나님의 진노가 이레 초반부터 이미 활동 중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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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임박성을 훼손한다. 휴거가 특정 인 심판과 우주적 징조를 기다려야 한다면, 성도는 더 이상 “언제든지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본다고 말할 수 없다.
5. 왜 환난전 휴거가 성경에 가장 잘 부합하는가
위의 비교를 종합해 보면, 여러 증거들이 환난전 휴거의 타당성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함께 수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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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임박성 교리를 온전히 보존한다. 오직 환난전 휴거만이, 모든 시대의 교회가 “하늘로부터 그의 아들이 오시기를 기다리게”(살전 1:10) 하며, 그 전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예언적 사건이 없다는 의미에서의 “언제든지 오심”을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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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의 때로부터의 면제 약속을 존중한다. 교회는 단지 심판의 해로움에서만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 그 때(시기) 자체로부터 면제될 것을 약속받았다(계 3:10). 이는 휴거가 대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교회를 제거하는 것으로 성취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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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의 구조를 설명해 준다. 1–3장에서 “교회”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4–18장에서는 놀랍도록 사라지는 것, 그리고 24장로가 하늘에서 보좌 주변에 앉아 있는 장면은, 환난전 휴거 이후 하늘에 있는 교회의 모습을 배경으로 할 때 가장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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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 본문과 재림 본문을 무리하게 하나로 합치지 않고 조화시킨다. 살전 4장과 고전 15장의 휴거 묘사와, 마 24장과 계 19장의 재림 묘사 사이에는 여러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것을 “두 국면을 가진 하나의 재림”으로 이해할 때, 곧 먼저 교회를 위한 공중 재림(휴거)과 이후 세상을 향한 지상 재림으로 구분할 때, 본문들이 가장 자연스럽게 조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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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적인 종말 사건들을 올바른 순서 안에 배치할 수 있다. 그리스도 심판대, 어린 양의 혼인 잔치, 적그리스도의 부상과 계시, 이스라엘의 회심과 보호, 천년왕국에 자연 몸으로 들어가는 성도들의 존재 등이, 환난전 휴거 틀 안에서 논리적이고 연속적인 순서 안에 잘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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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본질과 소명을 반영한다. 교회는 이스라엘과 구별되는 “비밀”(에베소서 3:3–6)로, 오순절과 휴거 사이의 기간에 성령의 세례로 형성되는 공동체이다(고전 12:13). 반면 칠십 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는 본질적으로 이스라엘 중심적인 시기이다(단 9:24; 렘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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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복스러운 소망’을 온전히 유지한다. “복스러운 소망”(딛 2:13)으로서의 휴거는, 교회가 인류 역사상 가장 혹독한 환난을 통과한 이후에야 오는 사건이 아니라, 그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주어질 때 비로소 참된 위로와 소망이 된다.
6. 결론
다섯 가지 휴거 시기 견해는 모두, 그리스도의 오심, 대환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성경의 증언을 진지하게 수용하려는 시도 가운데 형성된 것이다. 각 견해는 일정 부분 진리를 담고 있으며, 모두 그리스도의 실제적·육체적 재림과 하나님의 왕국의 최종 승리를 인정한다.
그러나 휴거의 시기를 성경 전체에 걸쳐 검토해 보면—임박성, 하나님의 진노, 교회의 본질, 요한계시록의 구조, 종말 사건들의 순서, 그리스도의 몸의 연합성 등을 고려할 때—환난전 휴거가 가장 일관되고 성경 본문에 충실한 종합을 제공한다.
이 견해만이:
- 그리스도의 임박한 오심에 대한 진정한 “언제든지”의 기대를 보존하고,
- 전 세계적 시험의 때로부터 교회를 면제하시겠다는 약속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 요한계시록의 환난 심판 동안 교회의 부재를 자연스럽게 설명하고,
- 교회와 이스라엘의 구별을 유지하면서도, 둘 모두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증한다.
이러한 이유로, 환난전 휴거는 교회가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라”(살전 4:17)는 약속이 언제 성취될 것인가에 대한, 가장 성경적인 설명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대 교회와 함께 계속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
“주여 오시옵소서.”
— 고린도전서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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