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형벌은 영원한가?
1. 서론
지옥의 형벌은 영원한가, 아니면 한시적인가? 이 질문은 성경적 종말론의 한가운데에 있으며, 하나님의 공의, 인간의 책임, 복음의 긴박성을 이해하는 방식 전체를 형성한다.
성경은 지옥의 실재만이 아니라, 그 지속 기간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말한다. 오늘날 일부 신학은 결국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보편구원설(universalism)이나, 악인은 최종적으로 소멸해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고 보는 소멸설(annihilationism)·조건적 불멸설(conditional immortality)을 주장하지만, 성경은 지옥의 형벌을 일관되게 의식적이고, 돌이킬 수 없으며, 영원한 것으로 묘사한다.
이 글은 지옥 형벌의 지속 기간에 대한 핵심 성경 자료를 검토하고, 주요 대안적 견해들에 답하면서, 한 가지 질문에 집중한다. 지옥의 형벌은 정말 영원한가?
2. 지옥의 지속 기간을 나타내는 성경의 언어
2.1 “영원한”(헬라어: aionios)
신약성경은 멸망받는 자들의 종말을 반복적으로 **“영원한”**이라는 형용사(aionios)로 묘사한다.
-
영원한 불 –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 마태복음 25:41 -
영원한 형벌 –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 25:46 -
영원한 멸망 –
“주 예수께서 …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 데살로니가후서 1:9
이 모든 본문에서 같은 단어 aionios는 다음과 같이 사용된다.
- 하나님의 영원하심 (로마서 16:26),
- 믿는 자의 구원과 생명 (요한복음 3:16; 히브리서 9:12),
- 악인의 형벌.
영생과 하나님의 영원성에 대하여서는 aionios를 “끝이 없는, 무한한” 의미로 이해하면서, 지옥의 형벌에 대해서만 “한시적” 의미로 축소하는 것은 해석학적으로 일관성이 없다.
특히 마태복음 25:46에서 대조는 매우 분명하다. 영벌과 영생이 평행 구조로 나란히 선다. 구원받은 자의 기쁨이 끝이 없다면, 멸망받은 자의 형벌도 그만큼 끝이 없다.
2.2 “세세토록”, “영원무궁토록”
다른 표현들도 같은 진리를 강화한다.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 요한계시록 14:11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 요한계시록 20:10
여기 “세세토록”(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τῶν αἰώνων)은 헬라어에서 끝이 없는 영원성을 나타내는 가장 강한 표현이다. 이 표현은
- 하나님의 영원하신 생명 (요한계시록 4:9–10),
-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 (요한계시록 11:15; 22:5),
- 악인의 끊임없는 고통 (요한계시록 14:11; 20:10)
을 모두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곧, 성경에서 하나님과 하늘, 그리고 그리스도의 나라의 영원성을 보장하는 바로 그 동일한 어휘가, 지옥 형벌의 영원성을 보장한다.
3. 지옥의 영원성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지옥 형벌이 영원한지에 대한 어떤 논의도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누구보다도 지옥에 대해 더 많이 말씀하셨고, 그 공포와 영구성을 묘사하기 위해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사용하셨다.
3.1 게헨나(Gehenna)와 꺼지지 않는 불
예수님은 “지옥”을 나타내는 용어로 자주 게헨나를 사용하셨다. 이는 예루살렘 바깥 힌놈 골짜기(힌놈의 아들 골짜기)를 배경으로 한 표현으로, 우상 숭배, 쓰레기 소각, 계속 타오르는 불과 연관된 장소이다. 예수님은 이 표현을 악인의 최종적인 운명에 적용하셨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
— 마가복음 9:43
이어 이렇게 덧붙이신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 마가복음 9:48 ( 이사야 66:24 인용)
여기에는 끝이 없음을 가리키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 “그들의 구더기가 죽지 않고”
-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이것은 연료가 다해 언젠가 꺼지는 불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불, 끝없이 지속되는 부패와 후회, 형벌의 상태를 말한다.
3.2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마태복음 25장의 마지막 심판 장면에서 예수님은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 마태복음 25:41
이 “영원한 불”은 다른 곳에서 불과 유황 못으로 묘사된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 요한계시록 20:10
그리스도를 거부한 사람들 역시 이 동일한 “영원한 불”을 함께 나누게 된다. 그 형벌의 기간은 제한되거나 조건부로 묘사되지 않는다. 마귀의 끝없는 고통과 동일한 시간적 범위를 가진다.
3.3 죽음 이후 고정되고 되돌릴 수 없는 상태
누가복음 16:19–31에서 예수님은 부자의 죽음 이후 상태를 묘사하시며, 그가 음부에서 의식적인 고통 가운데 있음을 말씀하신다. 그때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한다.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여도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 누가복음 16:26
이 장면은 중간기 상태(중간기 영적 상태)를 다루지만, 죽음 이후에는 자신의 처지가 돌이킬 수 없이 고정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형벌에서 복된 상태로 옮겨가는 이동은 없다. 이는 불못에서의 둘째 사망의 최종성과도 연결된다 (요한계시록 20:14–15; 21:8).
4. 소멸설과 조건적 불멸설에 대한 답변
소멸설(annihilationism) 혹은 **조건적 불멸설(conditional immortality)**은 악인들이 일정 기간의 형벌을 받은 후 최종적으로 파멸되어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불멸은 오직 믿는 자들에게만 속하며, 불신자는 결국 소멸된다는 것이다.
4.1 “멸망”과 “죽음, 멸하다”는 ‘존재의 소멸’을 뜻하는가?
데살로니가후서 1:9의 “영원한 멸망”이나, 요한복음 3:16의 “멸망” 같은 표현이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성경에서 **‘멸망’**은 보통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고, 파괴, 황폐, 목적 상실을 의미한다.
- 찢어진 “포도주 부대”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본래의 용도에는 더 이상 쓸 수 없는 상태이다 (마태복음 9:17).
- 누가복음 15장의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동전)는 존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주인의 소유와 보호에서 벗어난 상태이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후서 1:9의 “영원한 멸망”은 영원히 지속되는 파멸 상태, 곧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는” 영구적인 배제와 황폐를 의미하지, 존재의 소멸이 아니다.
4.2 “영원한”이 악인에게는 단지 “되돌릴 수 없음”만 의미하는가?
소멸설 옹호자들 중 일부는 “영원한 형벌” 같은 표현에서 aionios(영원한)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의 영구성, 즉 “영구적인 소멸 상태”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태복음 25:46에서 동일한 형용사가 동시에 **구원받은 자의 생명(영생)**과 **멸망받은 자의 형벌(영벌)**을 수식한다.
만일 “영생”이 끝없는 의식적 복락의 상태를 가리킨다면, “영벌” 역시 끝없는 의식적 형벌의 상태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 문장 안에서 동일한 단어의 의미를 임의로 둘로 나누는 것은 자의적인 해석이다.
4.3 불못과 계속되는 존재
소멸설은 또한 오랜 기간의 형벌 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인격적 존재들을 묘사하는 본문들을 설명하기 어렵다.
- 짐승(적그리스도의 세력)과 거짓 선지자는 그리스도 재림 때 “산 채로” 불못에 던져진다 (요한계시록 19:20).
- 천 년 후 사탄이 불못에 던져질 때,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 요한계시록 20:10
여기서 묘사되는 것은 분명히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고통이지, 소멸이 아니다. 그리고 같은 불못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모든 사람의 최종적인 처소로 제시된다 (요한계시록 20:15; 21:8).
4.4 도덕적 문제의 역전
소멸설은 종종 도덕적 이유에서 옹호된다. 유한한 시간 동안의 죄에 대하여 영원한 형벌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다음 사실을 간과한다.
- 범죄의 대상의 존귀함: 죄는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므로, 그 죄책은 무한하다.
- 반역의 지속성: 지옥은 회개한 성도들의 장소가 아니다. 성경은 지옥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어떤 암시도 주지 않는다. 반역의 태도는 계속된다.
게다가 소멸설은 또 다른 도덕적 난점을 낳는다. 모든 불신자를 **동일한 운명(완전 소멸)**으로 평준화해 버린다는 점이다. 그러나 성경은 행위와 받은 빛의 정도에 따라 **형벌의 다름(형벌의 경중)**을 분명히 말한다 (마태복음 11:20–24; 누가복음 12:47–48; 요한계시록 20:12–13).
영원한 의식적 형벌은 실제로 각 사람에게 비례하는 공의를 구현할 수 있으나, 소멸설은 이를 설명하기 어렵다.
5. 보편구원설과 사후 회심론에 대한 답변
**보편구원설(universalism)**은 결국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견해는 즉시, 다른 견해는 일정한 정화의 기간(형벌)을 거친 후 구원이 이뤄진다고 본다. 일부는 **죽음 이후의 ‘두 번째 기회’**까지 상정한다.
5.1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구절들에 대한 이해
보편구원설 옹호자들은 몇몇 구절을 근거로 제시한다.
- 요한복음 12:32 –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 디모데전서 2:4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고린도전서 15:22 –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 빌립보서 2:10–11 –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사…”
그러나 문맥 안에서 이 구절들은 보편적 구원을 가르치지 않는다.
- 요한복음 12:32 – 여기서 “모든 사람”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개인 하나하나가 예외 없이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문맥에서 예수님은 그를 거절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12:48).
- 디모데전서 2:4 –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선의(뜻)**를 표현하는 것이지, 모든 사람이 반드시 구원받는다는 *결정(decree)*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편지 안에서 많은 이들이 여전히 불신과 정죄 가운데 머문다고 증거한다.
- 고린도전서 15:22–23 – “모든 사람이 삶을 얻는다”고 할 때, 사도 바울은 곧이어 그 범위를 제한한다.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첫째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곧, 실제로 ‘살아나는 모든 자’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다.
- 빌립보서 2:10–11 – 모든 무릎이 꿇고 모든 입술이 고백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보편적 인정을 의미하지만, 보편적 구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심지어 귀신들도 예수의 주권을 인정하지만 (야고보서 2:19), 그것이 구원 신앙은 아니다. 강요된 고백, 억지로 꿇은 무릎은 구원하는 믿음이 아니다.
5.2 영원하고 되돌릴 수 없는 형벌에 대한 명백한 본문들
보편구원설 옹호자들이 애매하게 해석하는 본문들과 달리, 성경은 잃어버린 자들의 운명에 대해 매우 분명한 진술을 한다.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 25:46
“그가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 요한계시록 14:10–11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히브리서 9:27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에서도, 부자가 결국 해방되거나 구원받는다는 어떠한 암시도 없다. 오히려 이 땅에서 회개해야 한다는 지금 이 생애의 긴급성이 강조되고, 죽음 이후에 이미 넘을 수 없는 큰 구렁텅이가 고정되어 있음을 가르친다 (누가복음 16:26–31). 성경은 어디에서도 “두 번째 기회”나 죽음 이후의 복음 전도(사후 전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5.3 사랑과 공의를 함께 가지신 하나님
보편구원설은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나머지, 그분의 거룩하심, 의로우심, 진노를 사실상 희석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경적 사랑은 공의를 무효화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공의를 완전하게 성취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만나는 자리이다.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 로마서 3:26
이 구속을 거절하는 자는 여전히 하나님의 진노 아래 머문다 (요한복음 3:36). 결국 하나님께서 이미 선포하신 영원한 심판의 말씀을 나중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뒤집으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의미하지 않으신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6. 영원한 형벌 교리가 신학적으로 일관된 이유
6.1 죄의 무한한 중대성
모든 죄는 우리에게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고 순종하며 예배해야 할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해 행해진다. 죄의 무게는 행위 자체뿐 아니라, 공격받은 대상의 존엄성에 의해서도 측정된다. 말뚝을 치는 것과 사람을 치는 것은 같지 않고, 평민을 치는 것과 왕을 치는 것이 같을 수 없다.
하나님은 무한히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분께 대한 반역인 죄는 무한한 죄책을 수반하며, 이는 무한한(끝이 없는) 형벌을 정당화한다. 형벌을 단지 유한한 것으로 축소한다면, 결국 하나님의 거룩하심 역시 축소되기 쉽다.
6.2 인간의 자유와 운명의 고정
지옥은 하나님께서 고통을 즐기시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선택을 최종적으로 확정하시는 곳이다. 이 땅에서 반복적으로 하나님께 “떠나 달라, 간섭하지 말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마침내 “네 뜻대로 되게 하겠다”고 응답하신다.
- 하나님은 반역하는 자들을 억지로 천국에 들이셔서 사랑하도록 강요하지 않으신다.
- 하나님은 또한 그들을 소멸시켜 하나님의 형상을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으신다.
그 결과 남는 유일하게 공의로운 대안은, 영원한 분리와 회개 없는 계속된 반역에 비례하는 영속적 형벌이다.
6.3 천국의 실제성과 완전성을 위한 지옥의 필연성
악이 최종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격리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새 창조 세계는 영원히 위협받을 것이다.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의가 거하는 바”라고 묘사하고 (베드로후서 3:13), 어떤 더럽고 거짓된 것도 그곳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한다 (요한계시록 21:27).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의 거룩함과 안전이 영원히 보장되기 위해서는, 악인과 죄악이 영원히 밖으로 배제되어야 한다 (요한계시록 21:8; 22:15). 지옥의 영원한 형벌은 영원한 생명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드러내는 어두운 배경이 된다.
7. 실제적·목회적 적용
지옥의 형벌이 참으로 영원하다면, 몇 가지 중요한 적용점이 따른다.
- 전도의 긴박성 – 죽음 이후에는 두 번째 기회가 없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6:2).
- 교리가 긍휼을 형성한다 – 성경적 영원 형벌 교리는 냉혹함이나 정죄의 기쁨을 낳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눈물, 중보기도, 용기 있는 사랑의 복음 전파를 낳아야 한다.
- 하나님의 성품은 ‘선별 수용’이 아니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받아들이고, 그의 진노와 영원한 심판에 대한 가르침은 거부할 수 없다. 지옥을 경고하시는 분과 우리를 지옥에서 구원하시는 분은 동일한 그리스도시다.
8. 결론
성경이 자기 언어로 말하도록 그대로 두면, 지옥의 형벌은 영원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곧, 그것은 의식적이고, 돌이킬 수 없으며, 끝이 없는 형벌이다. “영원한 불”, “영원한 형벌”, “세세토록”, 그리고 영생과의 평행 구조는 지옥을 일시적이거나 소멸적 상태로 이해하는 해석을 허용하지 않는다.
보편구원설과 소멸설은 감정적인 갈등과 어려움 속에서 나온 이해 가능한 시도일 수 있으나, 성경을 문맥 안에서 주의 깊고 정직하게 읽을 때에는 지지를 얻지 못한다. 지옥 형벌의 영원성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하늘의 영원성, 그리스도의 영광, 하나님의 불변하신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는 성경의 언어 자체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영원한 형벌 교리는 매우 엄숙한 교리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분은 우리가 받아 마땅한 진노를 친히 담당하심으로, 회개하고 믿는 모든 자가 영원한 형벌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요한복음 3:16
FAQ
Q: 지옥의 형벌은 정말 ‘영원’한가요, 아니면 단지 ‘아주 긴 시간’ 동안만 지속되나요?
성경에 따르면, 지옥의 형벌은 진정으로 영원하다. 마태복음 25:46에서 같은 단어 (aionios)가 “영벌”과 “영생”을 모두 수식한다. 또한 요한계시록 14:11; 20:10은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다”고 말해, 일시적인 형벌이나 제한된 기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Q: 성경의 “멸망”, “멸하다”라는 표현은 악인이 결국 소멸된다는 뜻인가요?
그렇지 않다. 성경에서 “멸망하다”, “멸하다”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파멸, 황폐, 복된 상태의 상실을 의미한다. 데살로니가후서 1:9의 “영원한 멸망”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에서 영원히 분리되어 황폐한 상태에 놓이는 것을 말한다.
악인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 (요한복음 5:29) 그리고 그 후 불못에 던져진다 (요한계시록 20:11–15). 이것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부활한 몸과 함께 받는 영원한 형벌이다.
Q: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어떻게 영원한 형벌을 내리실 수 있나요?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거룩하심과 공의를 취소하지 않는다. 죄는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기에, 그 죄책은 무한하며, 따라서 끝이 없는 형벌이 정당하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완전히 만났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아들의 피를 통해 공의를 이루셨다 (로마서 3:26). 그러나 이 구속을 거절하는 자는 여전히 하나님의 진노 아래 머문다 (요한복음 3:36).
영원한 형벌은 죄의 심각성과,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로운 반역을 영원히 존중하신다는 사실을 함께 드러낸다.
Q: 결국에는 모두가 구원받고 지옥을 떠나게 되나요?
성경은 보편구원설이나 죽음 이후의 구원을 지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 어떤 이들은 “영벌”에, 어떤 이들은 “영생”에 들어간다고 분명히 가르친다 (마태복음 25:46),
- 악인의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며,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고 말한다 (요한계시록 14:11).
성경 어디에도 지옥에서 최종적으로 풀려나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가 구원받는다는 약속은 없다.
Q: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형벌 교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요?
그리스도인은 이 교리에 대해 겸손, 경외, 긴박함으로 반응해야 한다.
- 영원한 형벌의 현실은, 우리가 그 형벌에서 건짐을 받은 은혜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 또한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눈물과 긍휼을 낳아야 하며,
- 담대하고 사랑 있는 복음 전도에 불을 붙여야 한다.
이 교리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위한 몽둥이가 아니라, 복음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절대적 필요성을 드러내는 엄숙한 실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지옥의 형벌은 정말 ‘영원’한가요, 아니면 단지 ‘아주 긴 시간’ 동안만 지속되나요?
성경의 “멸망”, “멸하다”라는 표현은 악인이 결국 소멸된다는 뜻인가요?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어떻게 영원한 형벌을 내리실 수 있나요?
결국에는 모두가 구원받고 지옥을 떠나게 되나요?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형벌 교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요?
L. A. C.
종말론을 전문으로 하는 신학자로서, 신자들이 하나님의 예언적 말씀을 이해하도록 돕는 데 헌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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