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천년설 비평: 교회가 곧 천년왕국인가?

종말론12 분 소요

1. 서론

무천년설(amillennialism)은 성경적 종말론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견해 중 하나이다.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 그리고 많은 개혁파·복음주의 신학자들(어거스틴, 루터, 칼빈, 벌코프, 후케마 등)이 이 입장을 따른다. 무천년설은 요한계시록 20장을 상징적으로 읽으며, “천 년”을 미래의 지상 왕국이 아니라 현재의 교회 시대로 이해한다.

이 글은 (1) 무천년설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설명하고, 이어서 (2) 특별히 요한계시록 20장과 관련된 구약·신약 본문들을 중심으로 이 체계를 성경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근본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다.

“현재의 교회 시대 자체가 과연 천년왕국인가?”


2. 무천년설의 핵심 교리

2.1 “천년왕국”의 의미와 현재적 왕국 이해

**무천년설(amillennialism)**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천년왕국이 없다”는 뜻이지만, 무천년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천년왕국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지상에서의 문자적 천년 통치를 부정한다고 주장한다.

핵심 주장들은 다음과 같다.

  • **요한계시록 20:1–6의 “천 년”**은
    • 시간적·연대기적 의미가 아니라 상징적이다.
    •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길고 완전한 기간”을 가리킨다.
  • 따라서 천년왕국은 지금이며,
    • 현재 시대에 그리스도는 하늘(그리고 교회)에서 영적으로 통치하고 있다.
    • 어떤 학자들(후케마, 헨드릭슨 등)은 계시록 20장을 성도들이 하늘에서 왕 노릇 하는 모습으로 해석한다.
    • 다른 전통(어거스틴 등)은 이를 지상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통치로 이해한다.

결론적으로, 교회 시대 = 천년왕국이며,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영원 상태) 사이에, 역사 속에서 구별되는 별도의 미래적 왕국 단계는 없다고 본다.

2.2 사탄의 결박

무천년설은 요한계시록 20:1–3의 성취가 이미 일어났다고 해석한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 요한계시록 20:2

무천년주의자들의 주장:

  • 사탄은 그리스도의 초림 때 이미 “결박”되었다고 본다(마 12:28–29; 눅 10:18; 요 12:31).
  • 이 결박은 사탄의 한 가지 특정 활동에 대한 제한으로 이해한다. 곧 “더 이상 열방을 미혹하지 못하도록(계 20:3)” 묶인 것이다.
  • 실제적으로는 다음을 의미한다고 본다.
    • 사탄은 더 이상 복음의 세계적 확산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
    • 여전히 성도들을 시험하고 대적하지만, 세계 복음화 자체를 좌절시키지는 못한다.

2.3 요한계시록 20장의 두 부활

요한계시록 20장은 **“첫째 부활”**과,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이 차후에 살아나는 일을 언급한다(계 20:4–6).

무천년설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 첫째 부활(20:4–5a):
    • 육체적 부활이 아니라 영적 부활이다.
    • 대표적 견해:
      • 거듭남(중생)을 가리킨다(어거스틴).
      • 신자가 죽을 때, 그 영혼이 하늘로 들어가는 사건을 가리킨다(후케마, 헨드릭슨).
  • 둘째 부활(20:5b, 11–15):
    • 마지막 날에 의인과 악인이 동시에 일으킴을 받는 하나의 일반적 육체 부활이다(단 12:2; 요 5:28–29; 행 24:15 참조).

따라서 무천년설에 따르면, 시간 간격이 있는 두 차례의 육체 부활이 아니라, 단 한 번의 일반 부활만 존재하게 된다.

2.4 해석학: 상징적 예언 해석과 ‘재진술(Recapitulation)’

무천년설은 두 가지 중요한 해석 원칙을 전제한다.

  1. 예언의 상징적/영적 해석

    • 많은 구약의 왕국 예언들은 국가적 이스라엘에게 문자적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성취된다고 본다.
    •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숫자(“천” 포함)는 자주 비유적·상징적으로 이해한다.
  2. 요한계시록의 점진적 평행 구조(재진술, recapitulation)

    • 요한계시록 전체는 연속적인 연대기가 아니라, 서로 평행을 이루며 교회 시대 전체를 반복·재진술하는 여러 단락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 따라서 요한계시록 20장은 19장의 사건 이후를 시간 순서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처음(초림 시점)으로 되감기며 교회 시대 전체를 다른 각도에서 반복해서 보여준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구조 이해를 통해, 무천년설은 사탄의 결박성도들의 통치를 요한계시록 19장의 재림 이전, 곧 현재 교회 시대에 위치시킬 수 있게 된다.

2.5 이스라엘과 교회의 관계

무천년설은 일반적으로 **대체신학(혹은 성취신학)**의 한 형태를 취한다.

  • 이스라엘과 교회는 하나의 은혜 언약 아래 있는 한 백성으로 본다.
  •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땅, 왕좌, 왕국에 대한 약속은
    • 조건부였으므로 불순종으로 상실되었거나,
    • 과거 역사 속에서 이미 성취되었거나,
    • 혹은 영적으로 해석되어 이제는 교회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본다(예: 아브라함 언약, 다윗 언약).
  • 그래서 교회를 “새 이스라엘” 또는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3. 성경적 평가 ① 사탄의 결박

3.1 지금이 과연 요한계시록 20장 의미의 ‘결박’ 상태인가?

요한계시록 20장은 사탄의 투옥 상태를 매우 강렬한 표현으로 묘사한다.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 다시는 민족들을 미혹하지 못하게” — 요한계시록 20:3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포함된다.

  • 붙잡힘(“잡아서”)
  • 결박(“결박하여”)
  • 무저갱에 던짐(“던져”)
  • 문을 닫고 인봉함(“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이 이미지는 부분적 제약이 아니라, 사실상 완전한 수감 상태를 묘사한다.

반면, 신약 성경 전반은 교회 시대 전반에 걸친 사탄의 활발한 미혹 활동을 계속해서 증언한다.

  •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고후 4:4)
  •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8)
  • “온 천하를 꾀는 자” (계 12:9)
  • 바울은 사탄의 궤계(엡 6:11), 복음 사역자들을 가로막는 일(살전 2:18), “불법의 사람” 안에서의 활동(살후 2:9–10)을 경고한다.

만일 요한계시록 20장이 말하는 사탄의 결박이, 여전히 열방을 광범위하게 미혹하면서도 그냥 어느 정도 제약만 받는 상태를 뜻한다면, “무저갱에 가두어 인봉했다”는 강렬한 이미지와 “다시는 민족들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는 직설적인 진술은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처럼 보인다.

3.2 “열방을 미혹함”의 문제

무천년설은 “열방을 미혹한다”는 표현을 세계 복음화 자체를 막는 활동으로 국한시킨다. 그러나 성경은 사탄이 교회 시대 전반에 걸쳐

  • 개인과 민족 모두를 적극적으로 미혹하고
  • 짐승과 같은 제국들(계 13장)을 선동하며
  • “이 세상의 임금”(요 12:31; 14:30)으로서 실제 권세를 행사한다고 말한다.

만일 지금이 이미 요한계시록 20장의 의미에서의 결박 상태라면, 장차 있을 미래의 결박은 무엇을 더 제약할 여지가 있는가? 계 20:1–3의 묘사는, 현재 눈에 보이는 사탄의 활동보다는 앞으로 있을 결정적이고 철저한 활동 제한에 훨씬 더 잘 부합한다.


4. 성경적 평가 ② “첫째 부활”

4.1 요한계시록 20:4–6 본문

“또 내가 보니 … 그들도 살았어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 요한계시록 20:4–5

주목할 점:

  • “살았다”로 번역되는 헬라어 동사 **ezēsan(에자산)**은
    •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게 된 자들에게(4절),
    •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이 천 년 후에 살게 되는 것(5절)
      모두에 동일하게 사용된다.
  • 그리고 요한은 첫 번째 사건을 분명히 **“첫째 부활”**이라고 명명한다(5절).

4.2 “부활”이라는 용어의 일관성

“부활”을 가리키는 명사 **아나스타시스(anastasis)**는 신약에서 42번 등장한다. 논쟁이 되는 단 한 곳(여기, 무천년 해석이 맞다고 가정할 때)을 제외하면, 항상 육체적 부활을 의미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이 단어를

  • “영적 거듭남”이나
  • “죽은 성도의 영혼이 하늘로 옮겨가는 것”으로 해석하고,
    그 다음에 나오는 둘째 부활은 육체적 부활이라고 보는 것은, 심각한 어휘적 불일치를 초래한다. 헨리 알포드(Henry Alford)가 유명하게 지적했듯이, “첫째 부활은 영적이고 둘째 부활은 문자적이라고 한다면, 언어의 의미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더욱이, 문맥은 육체적 부활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 이들은 “참수(목 베임)를 당한 자들”(육체적 죽음)이며, 이어서 “살아났다”(육체적 부활)고 말한다.
  • 이 부활은 계 2:10–11과 6:9–11 등에서 약속된 성도들의 **육체적·공개적 신원(伸寃)**의 지연된 성취이다.

4.3 일반 부활 본문들과의 관계

무천년설은 요한복음 5:28–29다니엘 12:2와 같은 구절을 인용하여 단일한 일반 부활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구절들은 의인과 악인이 모두 부활한다는 사실을 말할 뿐, 언제 또는 얼마나 시간 간격을 두고 부활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 요한복음 5:28–29는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라는 **‘시각(때)’(hōra)**를 언급하는데, 이 단어는 반드시 60분짜리 “한 시간”을 뜻하지 않고, 하나의 시기·기간을 가리킬 수도 있다. 이 구절은 부활들의 상대적 시간 간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다.
  • 요한계시록 20장은, 다른 본문들이 생략한 정확한 시간적 배열을 제시한다. 곧 두 번의 부활이 있고, 그 사이에 천 년의 간격이 있다는 것이다.

무천년설은 마지막 심판의 통일성을 강조하지만, 그 대가로 요한계시록 20장이 분명히 강조하는 부활들 사이의 구분과 시간적 차이를 평탄하게 만들어 버리는 위험을 감수한다.


5. 성경적 평가 ③ 이스라엘, 교회, 그리고 왕국

5.1 아브라함 언약과 다윗 언약

무천년설은 이 언약들이

  • 조건부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상실되었거나,
  • 영적으로 해석되어 교회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경은 이 언약들을 반복해서 영원하고 무조건적인 언약으로 묘사한다.

  • 아브라함 언약
    •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창 17:7–8)
    • 창세기 15장에서는 하나님만이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심으로, 일방적 맹세로 언약을 확증하신다.
  • 다윗 언약
    •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삼하 7:16)
    • 시편 89:28–37에서는,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며, 말한 것을 변하지 아니하리라”는 강한 표현과 함께, 다윗의 후손과 보좌가 “해와 같이, 달과 같이” 영원히 계속될 것을 선언한다.

신약은 이 다윗 언약의 약속을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한다.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그가 야곱의 집을 영원히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 누가복음 1:32–33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늘에서 다스리신다는 것은 분명한 진리이지만, 누가복음 1장사도행전 1:6–7은, 이스라엘의 왕국 회복에 대한 유대적 기대를 취소하거나 “이제 그것은 전부 교회로 옮겨졌고 오직 하늘에서만 이루어진다”고 정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림 이후의 이스라엘을 향한 왕국적 성취의 여지를 분명히 남겨 둔다.

5.2 구약 왕국 예언과 지상 ‘중간 왕국’의 필요성

무천년설은 남아 있는 모든 왕국 예언들을

  • 현재의 교회 시대와,
  • 최종적 영원 상태(새 하늘과 새 땅)

둘 중 하나에 반드시 맞추어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몇몇 본문들은 이 둘 중 어느 쪽에도 잘 들어맞지 않으며, 오히려 **영원 상태 직전에 존재하는 지상 중간 왕국(천년왕국)**을 자연스럽게 가리킨다.

이사야 65:20–25

이 본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묘사한다.

  • 장수(長壽)의 시대: “백 세에 죽는 자가 젊은이라 하겠고”(20절)
  • 여전히 죄와 저주가 존재: 백 세까지 살다가 죽는 죄인은 “저주 받은 자”이다.
  • 전 지구적 평화와 동물 세계의 변화(25절)

이 조건들을 정리하면,

  • 현재 시대보다는 훨씬 나은 상태이다. 죽음이 극도로 늦춰지고 드물어진다.
  • 그러나 요한계시록 21:4; 22:3이 말하는 “다시는 사망이 없고 … 저주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는 영원 상태와는 명백히 다르다.

따라서 이 본문은, 현재보다는 훨씬 개선되었지만 아직 완전하지 않은 미래의 지상 왕국을 요구한다. 바로 이것이 요한계시록 20장이 제시하는 천년왕국의 그림과 정확히 부합한다.

스가랴 14:16–19

  • 여호와께서 친히 강림하시고 적들을 심판하신 후(슥 14:1–5), 살아남은 열방이 해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 초막절을 지키며 예배한다.
  • 그러나 올라오기를 거부하는 나라들에게는 비가 내리지 않고, 재앙이 임한다.

여기에는,

  • 주님의 재림 이후의 장면이지만, 여전히 불순종하는 열방그들을 향한 구체적인 징벌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영원 상태와는 조화될 수 없다.
  • 반면, 죄와 죽음이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직접적 통치 아래 열방이 다스려지는 천년왕국의 상황에는 아주 잘 들어맞는다.

5.3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구별

신약은 구원론적 차원에서의 하나됨(모든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을 분명히 가르치면서도, 민족적 이스라엘과 주로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의 역사적 구별을 계속 유지한다.

  • 로마서 11장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이 부분적으로 완악하게 되었고, 그 후에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25–26절)고 말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교회 안으로 완전히 흡수되어 민족적 정체성을 잃어버린다는 말이 아니다.

  • 사도행전 1:6–7에서 제자들은 이렇게 묻는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에게는 더 이상 회복할 나라가 없다”고 정정하지 않으시고, 단지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 속했다시기(타이밍)에 대한 호기심만을 제지하신다.

  • 고린도전서 10:32는 여전히 **“유대인과 헬라인과 하나님의 교회”**라는 세 분류를 구분한다.

무천년설의 “한 백성” 모델은, 구원론적 일치(모든 참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를 강조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성경이 계속 유지하는 구속사적·역사적 구별을 너무 빨리 소거해 버리고, 앞으로 있을 이스라엘을 향한 특별한 왕국적 역할까지도 희석시키는 위험을 안고 있다.


6. 요한계시록 19–20장: 연대기인가 재진술인가?

무천년설은 요한계시록 20장이 19장 이후를 시간 순으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 시대 전체를 다시 평행적으로 보여주는 단락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문 자체는 다른 인상을 준다.

  • 요한은 계 19:11, 17, 19; 20:1, 4, 11; 21:1에서 반복적으로 “또 내가 보니”(헬라어: kai eidon)를 사용하여, 새로운 장면들이 순차적으로 전개됨을 나타낸다.
  • 계 19:11–21:8에 나오는 장면들 대부분은, 거의 모든 해석자들이 미래적이며 재림 이후의 사건으로 인정한다.
    • 그리스도의 눈에 보이는 재림(19:11–16)
    •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최종 패배(19:19–21)
    • 백보좌 심판(20:11–15)
    • 새 하늘과 새 땅(21:1–8)

이 가운데에서 오직 20:1–6만을, 아무런 명시적 신호 없이 이전 시대로 되돌아가는 회상 장면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해석학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다. 본문의 자연스러운 흐름은 다음과 같다.

  1. 재림과 지상 적대 세력의 패배 (요한계시록 19장)
  2. 사탄의 결박과 천년왕국에서의 통치 (20:1–6)
  3. 천년 후 마지막 반역과 사탄의 최종 심판 (20:7–10)
  4.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 대한 백보좌 심판 (20:11–15)
  5. 영원 상태, 곧 새 하늘과 새 땅 (21–22장)

이렇게 볼 때,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따른 직접적인 역사적 결과로 나타나며, 단순히 교회 시대를 상징적으로 재묘사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7. 결론

무천년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통이며, 종말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일관된 체계를 제공한다. 또한 다음과 같은 점들을 균형 있게 강조한다.

  •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아버지 우편에서 통치하고 계신다는 사실
  •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으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는 “이미–아직” 구조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라는 진리

그러나 핵심 본문들을 있는 그대로 읽어 보면,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난다.

  • 요한계시록 20장이 묘사하는 사탄의 결박 상태는, 교회 시대 내내 관찰되는 그의 활발한 미혹 활동과 잘 맞지 않는다.
  • 첫째 부활”이라는 표현과 문맥 전체는, 악인들의 부활과 천 년의 간격을 둔 별개의 육체 부활을 강하게 시사한다.
  • 이사야 65장, 스가랴 14장과 같은 예언은, 현재 시대나 영원 상태 어느 쪽에도 잘 들어맞지 않지만, 재림 이후 **중간 시대적 지상 왕국(천년왕국)**과는 매우 잘 조화된다.
  • 아브라함 언약과 다윗 언약은 반복해서 영원하고 무조건적으로 제시되며, 하나님의 자가(自家) 맹세에 기초한 이 언약들은, 이스라엘과 열방을 포함하는 미래 지상적 성취를 자연스럽게 가리킨다.
  • 요한계시록 19–20장의 문맥과 연대기적 흐름은, 천년왕국을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위치시키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지, 현재 교회 시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이 모든 점들을 종합하면, 성경의 자료는 현재의 교회 시대를 약속된 천년왕국의 실체라기보다, 그 **전주곡(프렐류드)**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교회는 지금 하나님의 나라의 영적 첫 열매를 누리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열방을 향한 완전하고도 지상적인 다윗 왕국 통치는 아직 장차 올 일로 남아 있다.


FAQ

Q: 무천년설을 쉽게 설명하면 무엇입니까?

무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 사이에 미래의 지상에서 문자적인 천 년 통치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대신,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을 현재의 교회 시대 전체로 이해한다. 이 기간 동안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영적으로 통치하시며, 사탄은 복음이 열방으로 퍼져 나가는 일을 근본적으로 막지 못할 정도로 부분적으로 결박되어 있다고 본다.

Q: 무천년설은 문자적인 재림과 마지막 심판을 부정합니까?

그렇지 않다. 무천년주의자들은 눈에 보이는 실제 재림, 모든 사람의 일반적 육체 부활, 최종 심판,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을 분명히 믿는다. 다만 논쟁의 초점은, 그 사건 이전에 지상 천년왕국이 별도로 존재하는가(전천년설), 아니면 현재 교회 시대가 곧 그 천년왕국인가(무천년설)에 있다.

Q: 왜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무천년설을 비판합니까?

비판자들은 무천년설이 중요한 예언 본문들을 지나치게 영문화(영해)하거나 상징화하고, 성경이 두드러지게 유지하는 몇 가지 **구분(예: 두 부활, 이스라엘과 교회, 현 세대와 오는 세대)**을 평탄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본다. 특히 요한계시록 20장, 이사야 65장, 스가랴 14장, 아브라함·다윗 언약들은, 현재 시대나 영원 상태가 아닌 미래의 지상 천년왕국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Q: 무천년설은 이스라엘과 교회를 어떻게 봅니까?

무천년설은 보통 이스라엘과 교회를 하나님의 한 백성으로 이해하며, 구약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들을 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성취된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대해 전천년주의 비평가들은, 신약이 여전히 민족적 이스라엘의 미래 역할을 기대하고 있으며, 땅과 왕좌에 대한 국가적·역사적 약속을 전혀 다른 차원의 순전히 영적 축복으로만 바꾸어 버리는 것은 성경의 자연스러운 읽기와 거리가 있다고 본다.

Q: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은 문자적인 기간입니까?

무천년설은 이 “천 년”을 완전하고 충분한 기간을 의미하는 상징적 숫자로 보고,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 전체 교회 시대를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반면 전천년설은, 요한계시록에서 숫자가 종종 문자적으로 사용되고, 특히 계 20장에서 “천 년”이 여섯 번 반복되는 점에 주목하며, 이를 하나님이 정하신 실제 기간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 기간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시작되는 지상 천년왕국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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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무천년설을 쉽게 설명하면 무엇입니까?
무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 사이에 미래의 지상에서 문자적인 천 년 통치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대신,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을 현재의 교회 시대 전체로 이해한다. 이 기간 동안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영적으로 통치하시며, 사탄은 복음이 열방으로 퍼져 나가는 일을 근본적으로 막지 못할 정도로 부분적으로 결박되어 있다고 본다.
무천년설은 문자적인 재림과 마지막 심판을 부정합니까?
그렇지 않다. 무천년주의자들은 눈에 보이는 실제 재림, 모든 사람의 일반적 육체 부활, 최종 심판,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을 분명히 믿는다. 다만 논쟁의 초점은, 그 사건 이전에 지상 천년왕국이 별도로 존재하는가(전천년설), 아니면 현재 교회 시대가 곧 그 천년왕국인가(무천년설)에 있다.
왜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무천년설을 비판합니까?
비판자들은 무천년설이 중요한 예언 본문들을 지나치게 영문화(영해)하거나 상징화하고, 성경이 두드러지게 유지하는 몇 가지 구분(예: 두 부활, 이스라엘과 교회, 현 세대와 오는 세대)을 평탄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본다. 특히 요한계시록 20장, 이사야 65장, 스가랴 14장, 아브라함·다윗 언약들은, 현재 시대나 영원 상태가 아닌 미래의 지상 천년왕국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무천년설은 이스라엘과 교회를 어떻게 봅니까?
무천년설은 보통 이스라엘과 교회를 하나님의 한 백성으로 이해하며, 구약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들을 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성취된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대해 전천년주의 비평가들은, 신약이 여전히 민족적 이스라엘의 미래 역할을 기대하고 있으며, 땅과 왕좌에 대한 국가적·역사적 약속을 전혀 다른 차원의 순전히 영적 축복으로만 바꾸어 버리는 것은 성경의 자연스러운 읽기와 거리가 있다고 본다.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은 문자적인 기간입니까?
무천년설은 이 “천 년”을 완전하고 충분한 기간을 의미하는 상징적 숫자로 보고,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 전체 교회 시대를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반면 전천년설은, 요한계시록에서 숫자가 종종 문자적으로 사용되고, 특히 계 20장에서 “천 년”이 여섯 번 반복되는 점에 주목하며, 이를 하나님이 정하신 실제 기간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 기간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시작되는 지상 천년왕국이라고 본다. ---

L. A. C.

종말론을 전문으로 하는 신학자로서, 신자들이 하나님의 예언적 말씀을 이해하도록 돕는 데 헌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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