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적 해석 vs 비유적 해석: 성경 예언을 해석하는 올바른 방법

hermeneutics11 분 소요

1. 서론

성경의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느냐, 알레고리(상징·영적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종말론 전체를 전혀 다르게 이해하게 된다.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은 실제로 장차 이루어질 천년왕국인가, 아니면 단지 지금 이 시대를 상징하는 표어에 불과한가? 창세기 15장17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땅 약속은 미래에 실제로 주어질 지리적 영토인가, 아니면 교회를 가리키는 영적 은유인가?

핵심 문제는 단순히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해석학(hermeneutics), 곧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이다. 이 글은 문자적 해석알레고리(영해)적 해석의 차이를 설명하고, 문자‑문법‑역사적 해석 방법을 변증하며, 동시에 문자적 진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언제 예언적 본문을 비유적으로 이해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밝힌다.


2. 성경 예언의 문자적 해석이란 무엇인가?

2.1 정의: 문자적 = 정상적, 평이한 의미

해석학에서 문자적이라는 말은 라틴어 sensus literalis에서 나왔는데, 곧 본문이 말하는 평이하고 정상적인 의미를 뜻한다. 성경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예언의 말씀을 우리가 일반적인 진지한 의사소통을 이해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곧 정상적인 문법, 어휘, 역사적 문맥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다.

누군가 “골목에서 갈색 개 세 마리를 보았다”고 말하면, 우리는 암호를 찾지 않는다. 세 마리(다섯 마리가 아님), 갈색(검정이 아님), 개(고양이가 아님), 골목(공원이 아님)이라고 이해한다. 문자적 해석은 예언도 이와 같은 기본 전제 위에서 접근한다.

2.2 문법‑역사‑문맥적 해석 방법

예언의 문자적 해석은 흔히 문법‑역사적 해석 방법이라 불린다.

  • 문법적(grammatical) – 단어와 문장은 정상적인 언어 규칙(문장 구조, 동사의 시제, 명사, 전치사 등)에 따라 이해한다.
  • 역사적(historical) – 본문은 최초의 역사적·문화적 상황 속에서 읽으며, 그 말씀이 원 저자와 1차 독자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질문한다.
  • 문맥적(contextual) – 구절은 그 앞뒤 문맥, 해당 성경책 전체의 문맥, 성경 전체의 문맥 안에서 해석한다.

목표는 저자가 의도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지, 우리가 생각해 낸 영적·상징적 관념을 본문 위에 덧씌우는 것이 아니다.

2.3 문자적 해석은 비유, 상징, 예표를 배제하지 않는다

문자적이라는 말은 “목석같이 기계적으로” 또는 “과도하게 직역하여” 읽는다는 뜻이 아니다. 문자적 해석은 다음을 전제한다.

  • 비유적 표현을 비유로서 인정한다.
  • 상징을 인정하되, 그것이 반드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어떤 것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이해한다.
  • 예표(예: 제사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는 실제 인물·사건·제도가 장차 이루어질 문자적 성취를 예시하고 예고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예를 들면,

  • “내가 문이니”(요한복음 10:9)는 명백한 비유다. 예수님이 나무로 된 문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실제적인 진리가 있다. 곧 그분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출입구라는 것이다.
  • 하나님이 문자 그대로 “반석”이신 것은 아니지만(시편 18:2), 하나님은 실제로 반석처럼 신실하시고 흔들리지 않으신 분이다.
  •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금 촛대”는 상징이지만, 성경 자체가 그것을 일곱 교회라고 문자적으로 해석해 준다(요한계시록 1:20).

문자적 해석은 이렇게 묻는다. “이 비유나 상징이 가리키는 실제적 실체는 무엇인가?”
상징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이 가리키는 구체적 대상을 반드시 찾으려는 것이다.

2.4 한 본문은 하나의 의미, 다수의 적용

문자적 해석은 또한 다음을 인정한다.

  • 한 의미(sensus unum): 모든 예언 본문은 하나님께서 인간 저자를 통해 의도하신 기본 의미는 단 하나이다.
  • 많은 함의와 적용: 한 예언이 다양한 적용과 광범위한 함의를 가질 수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그 원래 하나의 의미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이 원칙은 어떤 본문이 끝없이 여러 개의 “깊은 의미”를 가진다고 하거나, 서로 모순되는 다중 의미(sensus plenior를 잘못 사용한 다중 해석)를 주장하는 것을 막아준다.


3. 성경 예언의 알레고리(영해)적 해석이란 무엇인가?

3.1 정의: 알레고리 / 영적 해석

알레고리(영해)적 해석은 예언의 문자적 의미를 부차적이거나 심지어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고, 그 대신 숨겨진 보다 깊은 영적 의미를 찾아내려는 경향을 말한다. 흔히 “영해” 또는 “영적 해석”이라고 부른다.

이 방법에서는,

  • 이스라엘은 교회를 상징하는 표상으로 바뀌기도 하고,
  • 땅의 약속은 하늘이나 “영적 복”으로 재해석되며,
  • 천년왕국은 현재 교회 시대를 상징하는 개념으로 축소되고,
  • 구체적인 예언의 세부 내용은 종종 “선이 악을 이긴다”와 같은 포괄적인 추상 개념 속에 흡수된다.

그 결과, 본문은 하나의 껍질이 되고, “진짜 의미”는 문자 그대로의 단어 이면이나 배후에 있다고 주장된다.

3.2 알레고리 해석이 문제적인 이유

성경적·논리적 관점에서 이 방법은 심각한 문제점을 지닌다.

  1. 객관적 기준의 부재
    “더 깊은 의미”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칙이 없다. 한 사람의 알레고리적 해석이 다른 사람의 해석보다 더 옳다는 증거를 제시하기 어렵다. 결국 해석은 해석자의 상상력 투사에 불과하게 된다.

  2. 자기모순적 성격
    “예언은 겉으로 보이는 의미가 아니라 더 깊은 영적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는, 예언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자적 주장이다. 알레고리 해석을 주장하는 사람은 자기 이론만큼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정작 성경 본문은 문자적 의미를 부정한다.

  3. 성경 자체의 해석 패턴과 충돌
    구약의 역사 서술–아담, 노아, 아브라함, 요나 등–은 신약 저자들에 의해 실제 역사로 받아들여진다(로마서 5:12–14; 마태복음 12:39–41 등). 성경은 스스로 역사적·예언적 본문을 일반적으로 알레고리로 돌리지 않는다. 예외적인 몇 경우만 분명히 알레고리라고 밝히며 사용한다(갈라디아서 4:24).

  4. 일관성 부족
    예언을 영해하는 많은 사람들은 정작 다른 교리들(죄, 칭의, 그리스도의 부활)은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오직 예언 부분에만 알레고리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해석학의 일관성 때문이 아니라, 신학적 선입견 때문임을 드러낼 뿐이다.


4. 왜 문자적 해석이 성경 예언 해석의 올바른 길인가?

4.1 그리스도 초림 예언은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

문자적 예언 해석을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성경적 근거는 이미 하나님께서 어떻게 예언을 성취하셨는가에 있다. 100개가 넘는 메시아 예언이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

  • 여자의 후손 – 창세기 3:15
  • 아브라함의 자손 – 창세기 12:3
  • 유다 지파에서 남 – 창세기 49:10
  • 다윗의 자손 – 예레미야 23:5–6
  • 동정녀에게서 나심 – 이사야 7:14
  • 베들레헴에서 나심 – 미가 5:2
  • 앞서 가는 사자의 사역 – 이사야 40:3
  • 찔림을 당하심 – 스가랴 12:10
  • 약 A.D. 33년경 “끊어져”(죽으심) – 다니엘 9:24–26
  • 부활하심 – 시편 16:10; 사도행전 2:30–32

하나님께서 초림 예언들을 이처럼 직접적이고 문자적으로 이루셨다면, 일관성상 재림 예언도 동일한 방식으로 성취될 것을 기대해야 한다. 단, 본문 자체가 분명히 상징적이라고 가르치는 경우는 예외다.

하나님께서 미래에 예언을 어떻게 성취하실지 알고 싶다면, 과거에 그것을 어떻게 성취하셨는지를 보라.

4.2 예수님의 예언 사용 방식

누가복음 4장 16–21절에서 예수님은 이사야 61장 1–2절을 읽으신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 누가복음 4:18–19(참조: 이사야 61:1–2)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신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 누가복음 4:21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 가운데 앞부분을 자신의 초림에 문자적으로 적용하셨다. 그런데 그분은 2절 중간, 곧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라는 표현 앞에서 낭독을 멈추신다. 이 부분은 재림 때에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을 남겨 두신 것이다.

이 사건은 다음을 보여 준다.

  • 예수님은 예언을 정밀하고 문자적으로 해석하셨다.
  • 한 절 안에도 초림과 재림이라는 서로 다른 시점의 성취가 함께 들어 있을 수 있으나, 의미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 “보복의 날”은 영적으로 소멸시킨 개념이 아니라, 단지 아직 성취되지 않은 미래의 실제 사건이다.

4.3 요한계시록의 상징도 결국 문자적 실체를 가리킨다

요한계시록은 상징과 이미지로 가득하지만, 그 상징들을 반복해서 직접 해석해 주며 문자적 실체를 제시한다.

  • 일곱 별 = 일곱 천사 – 요한계시록 1:20
  • 일곱 금 촛대 = 일곱 교회 – 요한계시록 1:20
  • 금 대접에 담긴 향 = 성도들의 기도 – 요한계시록 5:8
  • 많은 물 =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 – 요한계시록 17:15

상징 사용은 문자적 해석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적 실체를 더 강렬하게 전달하는 도구로 함께 존재한다.

4.4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할 결정적 이유들

요약하면, 문자적 해석이 옳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모든 진지한 의사소통을 이해하는 정상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2. 성경의 대부분은 문자적으로 읽을 때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3. 모든 비유적·알레고리적 표현은 먼저 문자적 의미를 알고 있어야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4. 문자적 해석만이 인간의 상상력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하게 건전하고 안전한 장치이다.
  5. 하나님께서 **말씀 하나하나(언어·단어)**를 감동으로 주셨다는 축자영감 교리에 가장 잘 부합한다.
  6. 후기 성경이 전기 성경을 해석하는 성경 내부의 해석 패턴과 일치한다.

5. 예언이 비유적·알레고리적 언어를 사용할 때

문자‑문법‑역사적 해석 방법은 예언이 종종 생생한 이미지, 시적 언어, 상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한다. 핵심 질문은 “문자냐 비유냐?”가 아니라 다음과 같다.

이 비유와 상징은 문자적 실재를 대체하려는가, 아니면 그것을 더 강력하게 전달하려는가?

5.1 비유적 언어를 식별하는 기본 원칙

문자적 해석은 다음과 같은 경우 본문을 비유적으로 이해한다.

  1. 누가 보아도 비유적일 때

    • 예수님: “내가 문이니”(요한복음 10:9), “나는 참포도나무요”(요한복음 15:1).
      누구도 예수님이 나무나 식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비유는 우리의 실제적 영적 의존을 가르친다.
  2. 본문 자체가 비유·알레고리임을 밝힐 때

    • 바울은 갈라디아서 4:24에서 자신이 알레고리를 사용한다고 분명히 밝힌다.
    • 예수님은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하시며 씨 뿌리는 자 비유의 상징들을 직접 해석해 주신다(누가복음 8:11–15).
  3. 문자적 해석이 분명한 비유가 아닌 다른 본문과 충돌할 때

    • “땅 사방 네 모퉁이”(요한계시록 7:1)는 지구가 네모난 모양이라는 주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 세상을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일 뿐이다.

이 고전적인 원칙이 요약해 준다.

“문자적 해석이 의미 있게 통한다면, 다른 의미를 찾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결국 말이 안 되는 해석에 이르게 된다.”

5.2 비유와 알레고리도 결국 문자적 진리를 전달한다

  • 비유(parable) – 예를 들어 악한 농부의 비유(누가복음 20:9–18)는 허구적 이야기 형식을 사용하지만, 실제로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거부한 사건과 장차 임할 실제 심판을 가르친다.
  • 성경에 나오는 소수의 알레고리(갈라디아서 4:21–31)는 분명히 알레고리라고 밝히면서도, 사라와 하갈이라는 실제 역사 인물에 근거한다.

따라서 어떤 본문에 이미지나 이야기 형식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 예언적 내용까지 “단지 영적 진리의 비유”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문자적으로 사실인지 모른다면, 무엇이 비유적으로 표현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5.3 문자적 접근과 알레고리 접근의 비교

특징문자‑문법‑역사적 해석 방법알레고리 / 영해적 해석 방법
기본 질문저자가 그 문맥에서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여기서 어떤 더 깊은 영적 사상을 찾을 수 있는가?
언어 처리 방식정상적인 문법·역사 규칙에 따라 해석단어가 문법을 넘어서 상징으로 자주 변형됨
상징의 사용상징은 구체적 실체를 가리킴상징이 구체적 대상 자체를 희미하게 만들기도 함
의미의 수한 기본 의미,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적용여러 층의 “더 깊은 의미”를 자주 주장
통제 가능성 / 객관성높음 – 본문, 문맥, 언어에 근거낮음 – 해석자의 주관적 사상에 크게 의존
예언의 성취 기대 방식분명히 비유가 아닌 한, 문자적 성취를 기대영적/“더 깊은” 성취를 주로 기대

6. 오늘날 성경 예언을 해석할 때의 실제적 원칙들

성경 예언을 신실하게 해석하고, 미숙한 문자주의와 주관적 알레고리를 모두 피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실제적인 원칙을 따라야 한다.

6.1 항상 평이한 의미에서 출발하라

예언 본문을 읽을 때, 다른 진지한 산문을 읽을 때와 동일하게 읽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 20:2–6에서 “천 년”이라는 표현이 반복될 때, 평이한 의미는 한정된 기간이다. 본문 어떤 부분도 우리에게 이것을 막연한 “긴 시간”의 상징으로 영해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평이한 의미가 문맥에 잘 들어맞고, 다른 성경과 충돌하지 않는다면, 그 평이한 의미를 수용해야 한다.

6.2 예언은 예언으로 비교하라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 베드로후서 1:20

어떤 한 예언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한 예언을 제대로 해석하려면,

  • 구약신약에 나타나는 동일한 사건·인물(예: 적그리스도, 여호와의 날, 천년왕국)에 대한 예언들을 서로 비교해야 하고,
  • 더 분명한 예언이 더 어려운 예언을 비추게 해야 하며,
  • 한 본문을 사용하여 다른 본문의 문자적 의미를 취소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신약이 교회에 적용된다고 해서, 구약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원래의 약속이 사라졌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6.3 예언의 시간 간격을 인식하라

구약 선지자들은 종종 장차 올 사건들을 겹쳐 보이는 산봉우리들처럼 바라보았다. 즉,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건들이 한 절 안에 나란히 배치된 경우가 있다.

  • 스가랴 9:9–10은 나귀를 타고 오시는 메시아의 초림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메시아의 재림 통치를 한 구절에 함께 놓는다.
  • 이사야 61:1–2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초림)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재림)을 한데 묶어 놓는데, 예수님은 누가복음 4:16–21에서 한 절 중간에서 멈추심으로 이 사이의 시대적 간격을 드러내신다.

이러한 간격을 인식하면, 모든 예언 성취를 한 시대에 억지로 끼워 넣으려 하다가, 아직 성취되지 않은 부분을 영적으로 돌려버리는 오류를 피할 수 있다.

6.4 해석과 적용을 구별하라

  • 해석은 “이 본문이 처음 독자에게 무엇을 의미했는가?”를 묻는다.
  • 적용은 “그 동일한 진리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적용을 갖는가?”를 묻는다.

예를 들면, 예레미야 31:31–34는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새 언약을 맺겠다고 분명히 약속한다. 오늘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새 언약의 영적 복에 참여하지만, 이 적용 사실이 원래 민족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 자체를 상징으로 바꾸거나 폐기하는 것은 아니다.


7. 결론

성경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알레고리(영해)로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사소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토대의 문제이다. 문자‑문법‑역사적 접근은,

  •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의사소통하시는 분이시며, 자신이 이해받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 하나님이 감동으로 주신 단어들 자체를 존중하며, 막연한 개념만을 중시하지 않고,
  • 성경이 스스로 보여 준 예언 성취의 패턴—특히 그리스도의 초림 예언 성취—을 따르며,
  • 인간의 상상력을 억제하고 본문에 복종하게 하는 객관적·본문 중심의 틀을 제공한다.

반대로 알레고리나 영해 중심의 방법은 예언을 본문이라는 닻에서 풀어 내어, 의미를 해석자 손에 맡겨 버린다. 이스라엘, 하나님 나라, 천년왕국, 심판이 주로 “상징”이 되어 버리는 순간, 어떤 신학 체계든지 본문에 억지로 끼워 넣을 수 있게 된다.

성경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비유, 상징, 깊은 영적 진리를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상징은 실제 대상을 가리키며, 모든 이미지는 실제 진리를 전달하며, 모든 예언은 그리스도 초림에 관한 예언들이 그러했듯이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신실하게 성취될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더욱 확실한 예언”(베드로후서 1:19)을 바르게 이해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문자‑문법‑역사적 해석 방법은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성경 예언을 해석하는 올바른 길이다.


자주 묻는 질문(FAQ)

Q: “성경 예언의 문자적 해석”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나요?

문자적 해석이란 예언 본문을 정상적인 문법과 역사적 문맥에 따라 읽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일반적인 진지한 글을 읽는 방식 그대로 예언도 읽는 것이다. 비유와 상징을 충분히 인정하지만, 그것들이 항상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진리를 가리키는 표현이지, 해석자의 상상력에 따라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영적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Q: 문자적 해석은 예언 속 상징과 이미지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다. 문자적 접근은 다니엘, 요한계시록과 같은 책에 나오는 상징, 시적 언어, 이미지를 충분히 인정한다. 중요한 점은, 모든 상징이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그 의미는 해석자의 상상력이 아니라, 본문 자체와 성경 전체의 문맥에서 찾아야 한다.

Q: 왜 예언을 알레고리(영해)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하나요?

알레고리 해석은 대개 객관적인 통제 원리가 부족하여, 본문을 해석자가 원하는 대로 바꿀 위험이 크다. 이것은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하나님께서 주신 구체적인 약속(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들)에 대한 확신을 무너뜨리며, 성경이 스스로 이전 예언을 해석하는 방식과도 어긋난다. 결국 예언이 인간 사상에 종속될 위험을 낳는다.

Q: 어떤 예언이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비유적으로 읽혀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다음 세 가지 질문을 하라.
(1) 언어가 누가 보아도 비유적인가? (예: “내가 문이니”)
(2) 본문이나 평행 구절이 이것을 비유·알레고리·상징이라고 분명히 밝히는가?
(3) 문자적 해석이 성경의 분명한 비유가 아닌 교훈들과 정면으로 충돌하는가?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해당되지 않는다면, 그 예언은 일반적으로 평이한 문자적 의미대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Q: 왜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느냐, 알레고리로 해석하느냐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우리가 어떤 해석 방법(해석학)을 선택하느냐가 결국 우리의 결론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문자적 해석은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 최종 심판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이 장차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실제로 성취될 것을 기대하게 한다. 반면, 알레고리 해석은 이런 약속들을 일반적인 영적 진리로 녹여버리는 경향이 있어, 이스라엘과 교회, 심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교리를 재구성하고, 결국 우리의 소망의 내용 자체를 바꾸어 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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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성경 예언의 문자적 해석”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나요?
문자적 해석이란 예언 본문을 **정상적인 문법과 역사적 문맥에 따라** 읽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일반적인 진지한 글을 읽는 방식 그대로 예언도 읽는 것이다. 비유와 상징을 충분히 인정하지만, 그것들이 항상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진리**를 가리키는 표현이지, 해석자의 상상력에 따라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영적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문자적 해석은 예언 속 상징과 이미지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다. 문자적 접근은 다니엘, 요한계시록과 같은 책에 나오는 상징, 시적 언어, 이미지를 충분히 인정한다. 중요한 점은, 모든 상징이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그 의미는 해석자의 상상력이 아니라, 본문 자체와 성경 전체의 문맥에서 찾아야 한다.
왜 예언을 알레고리(영해)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하나요?
알레고리 해석은 대개 객관적인 통제 원리가 부족하여, 본문을 해석자가 원하는 대로 바꿀 위험이 크다. 이것은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하나님께서 주신 구체적인 약속(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들)에 대한 확신을 무너뜨리며, 성경이 스스로 이전 예언을 해석하는 방식과도 어긋난다. 결국 예언이 인간 사상에 종속될 위험을 낳는다.
어떤 예언이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비유적으로 읽혀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다음 세 가지 질문을 하라. (1) 언어가 **누가 보아도 비유적**인가? (예: “내가 문이니”) (2) 본문이나 평행 구절이 이것을 **비유·알레고리·상징**이라고 분명히 밝히는가? (3) 문자적 해석이 성경의 분명한 비유가 아닌 교훈들과 **정면으로 충돌**하는가?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해당되지 않는다면, 그 예언은 일반적으로 **평이한 문자적 의미**대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왜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느냐, 알레고리로 해석하느냐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우리가 어떤 해석 방법(해석학)을 선택하느냐가 결국 우리의 결론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문자적 해석은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 최종 심판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이 장차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실제로 성취될 것**을 기대하게 한다. 반면, 알레고리 해석은 이런 약속들을 일반적인 영적 진리로 녹여버리는 경향이 있어, 이스라엘과 교회, 심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교리를 재구성하고, 결국 우리의 **소망의 내용** 자체를 바꾸어 버릴 수 있다.

L. A. C.

종말론을 전문으로 하는 신학자로서, 신자들이 하나님의 예언적 말씀을 이해하도록 돕는 데 헌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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