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
1. 서론
성경적 종말론에서 새 예루살렘은 구속받은 자들의 최종적이며 영원한 거처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악을 심판하시고, 사망을 폐하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 뒤 성경의 절정에서 나타난다(계 21:1). 이 “거룩한 성”은 단순히 구원의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원히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시는 실제적이며 영광스러운 도성으로 묘사된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 요한계시록 21:2
새 예루살렘을 이해하는 것은 영원 상태와 성도의 궁극적 소망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완성으로, 하늘과 땅이 연합되고, 저주가 제거되며,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히 그분의 임재 안에서 “집”을 얻게 되는 것이다.
2. 새 예루살렘에 대한 성경적 기초
2.1 핵심 본문
새 예루살렘에 대한 핵심적인 성경 묘사는 요한계시록 21–22장에 있다. 몇 가지 중요한 진술이 이 도성이 성도의 영원한 집이라는 정체성을 규정한다.
- 새 예루살렘은 마지막 심판과 현 하늘과 땅의 소멸 이후에 나타난다(계 20:11; 21:1).
-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라 불리며, 반복해서 실제적인 도성으로 묘사된다(계 21:2, 10, 14–16, 18–19; 22:2–3, 14, 19).
- 이 도성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며, 새 땅 위에 혹은 새 땅과 직접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계 21:2, 10).
- 이 도성은 “어린 양의 아내인 신부”(계 21:9)로 불리며,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과의 친밀하고 불가분의 연합을 강조한다.
다른 신약 본문들도 이 현실을 미리 내다본다.
- 믿는 자들은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을 사모하며, “기초가 있는 성, 곧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신 성”을 바란다(히 11:10, 16).
-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영적으로 이 영역과 연합되어 있다.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
— 히브리서 12:22
이처럼 새 예루살렘은 하늘의 최종적 형태이며, 새 땅 위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중심지로서, 성도들이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의식적으로 영원히 거하게 될 실제적 장소이다.
2.2 천년왕국이 아닌 영원 상태
요한계시록의 구조는 새 예루살렘이 다음 사건들 이후에 나타남을 보여 준다.
- 그리스도의 천년왕국 통치(계 20:1–6)
- 사탄의 마지막 반역과 최종적 패배(계 20:7–10)
- 큰 흰 보좌 심판(계 20:11–15)
그 후에야 비로소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의 강림이 언급된다(계 21:1–2). 이는 새 예루살렘이 일시적이거나 단지 천년왕국 시대의 도성이 아니라, 성도들의 영원하고 영구적인 거처임을 보여 준다.
3. 새 예루살렘의 물리적·구조적 특징
3.1 실제로 측량 가능한 도성
요한은 분명한 공간적 묘사를 전해 듣는다.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재매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 요한계시록 21:16
- 형태: 길이·너비·높이가 동일한 완전한 정육면체(혹은 피라미드형 구조일 가능성도 제기됨).
- 규모: “일만 이천 스타디온”은 오늘날 단위로 약 2,200–2,400km 정도의 길이에 해당한다.
이는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계 7:9)를 수용하고도 남을 방대한 입방 공간을 제공한다. - 성벽: “백사십사 규빗”(약 65m 안팎, 계 21:17)의 치수를 가진 벽은, 높이 또는 두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도성의 안전과 위엄을 강조한다.
이처럼 반복되는 구체적 치수와 재료의 언급은 새 예루살렘이 단순한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실제적 도성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3.2 성곽, 문, 기초석
새 예루살렘의 건축적 구조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 크고 높은 벽이 “벽옥”(벽옥 같은 보석)으로 되어 있다(계 21:12, 18). 이는 모든 악으로부터의 안전과 분리를 상징한다.
- 열두 문이 있는데, 동·북·남·서로 각각 세 문씩 배치되고, 각 문은 “한 진주”로 되어 있다(계 21:12–13, 21).
- 각 문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계 21:12).
- 각 문에는 천사들이 서 있어, 거룩한 수호와 환영을 상징한다.
- 도성 성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각 기초석은 서로 다른 보석으로 꾸며져 있다(계 21:19–20).
- 각 기초석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계 21:14).
문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기초석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은, 새 예루살렘이 이스라엘과 교회, 모든 구속받은 백성의 영원한 집임을 보여 준다. 이 둘은 구별되지만, 한 도성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함께 거한다.
3.3 재료와 빛
이 도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전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 도성 자체는 “맑은 유리 같은 정금”(계 21:18, 21)으로 되어 있다.
- 성벽은 “벽옥”으로, 기초석들은 여러 종류의 보석들로 장식되어 있다(계 21:18–20).
- 투명하고 투과성 있는 재료들이 하나님의 영광이 막힘없이 비치도록 한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 요한계시록 21:23
그곳에는 밤이 없다(계 21:25; 22:5).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임재 자체로부터 나오는 빛으로 영구히, 찬란하게 비추어진다.
3.4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
도성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보좌와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있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 요한계시록 22:1–2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생명수의 강: 수정 같이 맑은 물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온다. 이는 영원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축복이 끊임없이 흘러나옴을 상징한다.
- 생명나무: 강 좌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계 22:2) 있다.
- 그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하게 하는”(치유, 회복에 이르는) 것으로 묘사된다(계 22:2).
이는 더 이상 질병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계 21:4), 생명의 충만을 영원히 유지·증진시키는 은혜를 가리킨다.
- 그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하게 하는”(치유, 회복에 이르는) 것으로 묘사된다(계 22:2).
타락 이후 인류에게서 막혀 버렸던 생명나무(창 3:22–24)가 이제 영원히 접근 가능해졌다는 사실은, 에덴이 완전히 회복될 뿐 아니라 새 예루살렘에서 훨씬 더 영화롭게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3.5 성전도 없고, 바다도 없고, 저주도 없음
몇 가지 **부재(不在)**는 새 예루살렘이 지금의 세상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세계임을 보여 준다.
- 성전이 없음: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 요한계시록 21:22
예배가 더 이상 특정 건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도성 전체가 지성소가 된다. - 바다가 없음(계 21:1): 고대 세계에서 바다는 혼돈과 위험, 분리의 상징이었다. 바다가 없다는 것은 그 모든 혼돈과 분리가 완전히 제거되었음을 시사한다.
- 저주가 없음: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
— 요한계시록 22:3
죄와 부패, 허무함 등 타락의 모든 결과가 완전히 제거된다.
이 모든 것은 새 예루살렘이 영화로운 몸을 입은 성도들에게 완전히 적합한, 저주가 전혀 없는 완전한 환경임을 강조한다.
4. 새 예루살렘의 거민과 그 삶
4.1 하나님의 직접적 임재
새 예루살렘의 중심은 건축물이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 요한계시록 21:3
이는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는 언약적 약속이 가장 충만하고, 가시적이며, 영구적으로 성취된 모습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직접 바라보는 지복 직관(Beatific Vision)**을 누리게 된다.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 요한계시록 22:4
“그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직접적이고, 매개 없는, 가로막힘 없는 교제를 누린다는 의미이다.
4.2 모든 시대의 구속받은 자들
히브리서는 하늘의 예루살렘을 다양한 구속 공동체가 거하는 곳으로 묘사한다(히 12:22–24).
- “천만 천사들의 무리”
-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
- “온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구약 성도들과 교회 시대 밖의 다른 의인들)
- “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
- “모든 사람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요한계시록 21–22장은 이러한 모든 구속받은 무리가 궁극적으로 새 예루살렘 안팎에 거하게 됨을 보여 준다. 이 도성은 다음과 같은 자들의 공동의 영원한 본향이다.
-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
- 구원받은 이스라엘
- 모든 시대와 모든 민족 가운데서 구원받은 자들(“그 빛 가운데로 다니는 만국”, 계 21:24)
4.3 완전한 생명, 기쁨, 안식
새 예루살렘 안에서의 삶의 조건은 타락한 세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 요한계시록 21:4
이 도성 안에서는
- 사망이 전혀 없다(계 21:4).
- 애통, 울부짖음, 고통이 전혀 없다(계 21:4).
- 밤이 없고, 두려움이나 불안, 불안정이 없다(계 21:25; 22:5).
- 성도들은 썩지 아니할 영화로운 몸을 입는다(고전 15:42–54; 빌 3:21). 이 몸은 영원한 활동과 기쁨을 누리기에 완벽히 적합하다.
4.4 예배, 섬김, 그리고 왕 노릇함
새 예루살렘에서의 삶은 수동적이거나 단조로운 휴식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능동적·역동적 존재이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 요한계시록 22:3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 요한계시록 22:5
영원한 삶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끊임없는 예배: 삶의 전 영역이 예배가 되며, 성속(聖俗)의 이분법이 사라진다.
- 제사장적 섬김: 성도들은 “나라와 제사장”(계 1:6)으로서 하나님을 섬긴다(계 22:3).
-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림: 성도들은 삼위 하나님 권위 아래 실제적이고 위임된 통치를 수행한다(계 22:5). 이는 창세기 1:26–28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땅을 다스리라”는 문화 명령의 궁극적 성취이다.
- 영원한 배움과 교제: 유한한 피조물인 우리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영원토록 더 깊이 알아가고, 그분을 더 풍성히 누리지만, 결코 그분의 충만을 다 소진하지 못한다.
4.5 거룩과 안전
새 예루살렘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거룩한 성이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 요한계시록 21:27
- 그 어떤 죄도 결코 그 안에 들어올 수 없다.
- 사탄과 악한 영들, 회개하지 않은 모든 죄인들은 영원히 불못에 던져진다(계 20:10, 14–15).
- 도성의 문들이 항상 열려 있음(계 21:25)은, 완전한 안전 속에서도 어떤 두려움이나 위협이 전혀 없고, 방어가 필요 없는 상태를 상징한다.
따라서 새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자들에게 완전한 거룩, 절대적 안전, 넘치는 사랑이 영원히 충만한 세계이다.
5. 성도의 영원한 집으로서 새 예루살렘의 신학적 의미
5.1 하늘과 땅의 연합
새 예루살렘이 내려올 때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 요한계시록 21:1–2
영원 상태는 막연한 “하늘”에서 영혼만 떠다니는 상태가 아니라, 부활한 몸을 입은 성도들이 새 하늘과 새 땅 위에 세워진 부활의 도성,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직접 교제하며 살아가는 상태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물질 세계를 포함한 창조 전체를 영화롭게 갱신하신 상태에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려는 영원한 목적의 성취이다.
5.2 타락의 역전과 구속사의 완성
새 예루살렘은 창세기 3장에 나타난 타락의 결과를 완전히 역전시키며, 구속 역사의 모든 흐름을 종결·완성한다.
| 타락한 세상 (창세기 3장) | 새 예루살렘 (요한계시록 21–22장) |
|---|---|
| 죄와 저주의 시작 | “다시 저주가 없으며”(22:3) |
| 에덴에서 추방 | 영원한 도성으로의 입성(21:27) |
| 생명나무 접근 금지(창 3:24) | 생명나무에 대한 완전한 접근(22:2, 14) |
| 사망·슬픔·고통의 시작 | “다시 사망이 없고 … 애통하는 것이나 …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21:4) |
| 하나님의 임재가 멀어짐 |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21:3);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22:4) |
타락으로 인한 모든 상처는 단지 치유되는 데 그치지 않고, 영원한 영광으로 전환·초월된다.
5.3 언약과 약속들의 성취
새 예루살렘은 또한 다음과 같은 언약과 약속들의 완전한 성취이다.
-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약속된 “영원한 기업”(히 11:10, 16)이 새 예루살렘과 새 땅 안에서 실현된다.
- 다윗 언약의 성취: 다윗에게 약속된 영원한 왕좌와 나라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계 22:1, 3)를 중심으로 완성된다.
- 새 언약의 성취: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마음에 율법을 기록하시고, 영원히 그들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하신 약속(렘 31:31–34; 계 21:3)이 온전히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며(고후 1:20), 새 예루살렘은 그 “예”가 눈에 보이는 영원한 형태로 구현된 실체이다.
5.4 신부와 도성
요한계시록은 새 예루살렘을 이렇게 부른다.
“어린 양의 아내 곧 신부를 네게 보이리라 …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이니”
— 요한계시록 21:9–10 요약
하나님의 백성 자체가 그리스도의 신부이지만, 도성인 새 예루살렘은 신부를 위해 예비된 신방이자 신랑과 더불어 거할 영원한 집으로 묘사된다. 이 이미지는 다음을 나타낸다.
- 아름다움: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하듯, 도성은 완전한 영광과 아름다움으로 장식된다.
- 친밀함: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시며, 더 이상 어떠한 분리가 없다.
- 영속성: 깨질 수 없는 영원한 혼인 언약과 같이, 이 연합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에 영원히 거하는 것은 곧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영원으로 연장된 상태라 할 수 있다.
6. 지금,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사는 삶
새 예루살렘 교리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이론이 아니라, 목회적이고 실제적인 교리이다. 성경은 영원한 도성에 대한 소망을 언제나 현재의 순종과 인내와 연결시킨다.
- 베드로는 성도들이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말하며, 그러므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아야 한다고 권면한다(벧후 3:11–13).
- 바울은 신자들에게 “위의 것을 찾으라 … 위의 것을 생각하라”(골 3:1–2)고 권하며, 그 위의 것 안에는 장차 새 예루살렘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삶이 포함된다.
- 히브리서는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오직 장차 올 도성을 찾는다”(히 13:14)고 말하며, 현재의 수치와 고난을 견디도록 격려한다.
우리의 참된 본향이 새 예루살렘이라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열매를 맺게 한다.
- 고난 중에도 인내와 견고함을 북돋는다.
- 이 세상과 그 정욕에 대한 집착을 느슨하게 만든다.
- 우리의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구원의 확신과 감사를 더 깊게 한다.
-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 도성에 들어갈 수 있기에, 복음 전도와 제자 삼기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킨다(계 21:27).
새 예루살렘은 종말론의 부수적인 주제가 아니라, 성도의 소망이 최종적으로 구체화된 형태이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는 주님의 기도가 최종적으로 성취되는 모습이다.
7. 결론
새 예루살렘은 성경적 종말론의 절정으로, 성도의 영원한 거처로 제시된다. 그것은 새 땅 위에 세워진 실제적이고, 거대하며,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도성으로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친히, 눈에 보이게, 영원히 함께 거하신다.
- 저주는 사라지고, 모든 눈물과 슬픔과 고통이 완전히 사라졌다.
-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가 끝이 없는 풍성한 생명을 상징한다.
- 성도들은 완전한 거룩과 기쁨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며, 세세토록 왕 노릇한다.
이 하늘의 도성은 그리스도인을 위한 진정한 본향이며, 그리스도께서 이미 예비하셨고 그분의 완성된 구속 사역으로 보증된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새 예루살렘에 예약된 처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분을 거절하는 자는 영원히 그 도성 밖에 남게 된다.
이 점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초청과 경고를 함께 제시한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 요한계시록 22:17
새 예루살렘으로의 입성은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이지만, 오직 어린 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금 이 땅에서 그분께 나아오는 자들은 그곳에서, 그분과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이다.
FAQ
Q: 새 예루살렘은 실제 도성입니까, 아니면 단지 교회를 상징하는 비유입니까?
요한계시록 21–22장은 새 예루살렘을 측량 가능한 실제 도성으로 제시한다. 길이·너비·높이, 성벽, 문, 기초석, 거리, 강, 보좌 등이 구체적 치수와 재료와 함께 자세히 묘사된다. 동시에 이 도성은 “어린 양의 아내인 신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하나님의 백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적 의미가 도성의 실제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이해는, 새 예루살렘이 실제적이고 물질적인 영원한 도성이며, 그 안에 교회를 포함한 모든 구속받은 자들이 거한다는 것이다.
Q: 모든 성도들이 영원토록 새 예루살렘 안에서만 살게 됩니까?
모든 구속받은 자들은 새 예루살렘에 자유롭게 출입하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새 땅 위에 “만국”과 “땅의 왕들”이 존재함을 말한다(계 21:24–26).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의 수도요 중심지로 기능하며, 성도들은 도성 안과 새 땅 전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완전한 교제와 섬김의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즉, 새 예루살렘은 모든 성도의 본부이자 본향이며, 동시에 새 창조 전체가 성도의 활동 무대가 된다.
Q: 새 예루살렘에서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새 예루살렘에서의 삶은 능동적이고 기쁨으로 충만한 하나님 중심의 삶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어린 양을 섬기며, “세세토록 왕 노릇”한다(계 22:5). 사망·슬픔·고통은 더 이상 없지만(계 21:4), 그 대신 의미 있는 사역, 배움, 교제, 창조 세계의 탐구와 누림이 있을 것이다. 영화로운 몸은 피곤하거나 쇠하지 않기에, 지치지 않는 섬김과 기쁨이 가능하다.
Q: 새 예루살렘은 ‘하늘’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영원 상태에서 새 예루살렘은 곧 땅으로 내려온 하늘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히 12:22)이지만, 마지막 때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된 후, 이 도성이 새 땅으로 내려온다(계 21:2). 그 이후 “하늘”은 더 이상 멀리 떨어진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는 이 도성 안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로 연합된 상태가 된다.
Q: 누가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합니까?
요한계시록은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한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 21:27).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불신앙 가운데 남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계 20:15)에 던져진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을 받은 자들만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그분과 영원히 거할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새 예루살렘은 실제 도성입니까, 아니면 단지 교회를 상징하는 비유입니까?
모든 성도들이 영원토록 새 예루살렘 안에서만 살게 됩니까?
새 예루살렘에서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새 예루살렘은 ‘하늘’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누가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합니까?
L. A. C.
종말론을 전문으로 하는 신학자로서, 신자들이 하나님의 예언적 말씀을 이해하도록 돕는 데 헌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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